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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영균 신부의 길 위에서 깨달은 인생

30년간 성직자의 길을 걸어온 인영균 신부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On December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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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다다르면 모두 순례자가 된다

“녹록지 않은 여정이지만 깨달음이 있어요.” 5년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성 베네딕도회 라바날 수도원에서 봉사를 이어온 인영균 신부(56세·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속)는 현지에서 만난 순례자들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됐다고 전했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인생 이야기, 자신의 내면을 갈고닦으며 순례자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개개인의 도전 정신을 바라보며 인간이 살아 숨 쉬는 근본적인 이유를 배웠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스페인의 수호성인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여정이다. 수많은 이들의 버킷 리스트로 꼽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말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800km에 달하는 길을 두 발로 걸어 완주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영균 신부는 2016년 늦봄 산티아고 순례길 현지 수도원에 선교 사제로 파견돼 수도원에서 순례자를 맞이하고 그들과 함께 기도를 나누며 안내자의 역할을 해왔다. 성직자로서 순례자 길을 걸으며 느꼈던 은총과 순례자들의 경험을 덧대어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결과를 얻어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위치한 라바날 수도원에서 머물렀던 시간을 담은 책 <나는 산티아고 신부다>가 출간됐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가진 의미를 전하고 싶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넘어 큰 뜻이 숨어 있는 곳이에요. 스페인어로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라고 하는데, 카미노는 길을 의미하고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던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에요. 데(de)는 정관사 더(The)를 뜻하죠. 카미노라는 명칭이 붙은 곳은 많아요. 단순히 길을 지칭하는 말이니까요.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정관사가 붙어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로 거듭나요. 글은 2020년 3월 코로나19로 스페인의 국경이 봉쇄되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현지 수도원에서 겪었던 일들과 그동안 만났던 순례자들과의 일화를 적어 내려갔죠. 순례자들이 그 길에서 깨달은 바와 그 과정을 봐온 저의 수기가 힘이 되길 바랍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라바날 수도원에서 보낸 5년간 순례자들에게 수많은 선물을 받았어요. 800km에 이르는 길을 걸으며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한 사람들의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졌어요. 제가 만난 순례자들은 하나같이 목마른 사람들이었어요. 갈증을 채우기 위해 스펙을 쌓고, 옆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살다가 결핍을 채우는 진정한 방법을 깨닫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은 사람들이었죠. 내면에 생긴 결핍은 스스로가 단단해져야 채워진다는 진리를 깨달은 분들이었어요. 라바날 수도원은 산티아고 순례길 3분의 2 지점에 위치한 곳인데, 고된 여정에 발바닥이 엉망이 돼서 온 순례자가 있었어요. 그분에게 이 길을 걷기로 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요. 몸은 힘들지만, 그만큼 마음은 넉넉해졌다고 이야기했어요. 수도원에서 봉사 활동을 이어가면서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순례자들 덕분이에요. 그들과 대화하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참 신비로운 일이에요. 인간이 풀 수 없는 영적인 의미의 신비로움이죠. 제가 느꼈던 신비로움을 나누고자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순례자 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 길을 걷는 분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에요. 순례자 길에서 겪는 일은 사실 인간사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에요. 고통, 번뇌, 포기와 도전에 대한 갈등 등이 그렇죠. 종교와 상관없이 순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썼어요. 이 책을 통해 내적인 순례를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라바날 수도원에서 5년 동안 수많은 순례자를 맞이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으면요?
눈이 먼 아버지와 대학생 딸이 손을 잡고 수도원에 왔어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부녀가 힘을 합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절반 이상을 걸어온 거였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가 화학품을 다루는 연구소에서 일하다가 실명이 됐다고 했어요. 신체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 걷기도 쉽지 않은 길인데 아버지를 보필하고 온 딸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의 자연을 눈에 담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는 딸과 함께 이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에 대한 기쁨이 크더라고요. 그런 부녀를 바라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수도원에서 봉사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오거나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고 순례자 길을 걷는 분들을 종종 봤어요. 인간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 흥미로웠을 거 같아요.
맞아요. 순례자 길을 걷는 이유는 저마다 달라요. 단순히 걷기 위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는 분들도 있고, 지금 삶에서 멈추고 미래를 고민하기 위해 온 분들도 있죠. 자신의 일상과 책임에서 벗어나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죠. 라바날 수도원에는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불교, 개신교, 무신론자 등 다양한 순례자가 머물렀어요. 종교로 소통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유대감이 생기고 가까워져요. 저 또한 신자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나눔을 이어왔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 길인지 알려주면 걸었던 길이 다르게 와닿는다고 하는 분이 많아요. 어떤 동기가 됐든 목적지에 다다르면 모두 순례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적잖은데 이들에겐 어떤 조언을 하나요?
계획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라고 해요. 신부인 저도 종교적인 의미가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어요.(웃음)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배경엔 욕심이 있어요. 2017년 여름에 이탈리아 부부 순례자를 만났어요. 초반에 아내의 다리에 무리가 생겨 제대로 걷지 못한다며 절망했어요.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순례는 내 의지대로, 내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어요. 이 부부뿐만 아니라 비슷한 마음을 가진 모든 분에게 같은 말을 해요. 참된 순례란 온전히 내맡기고 또 온전히 받아들이는 행위라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많은 사람의 버킷 리스트로 꼽힙니다. 순례를 떠나기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가 있나요?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짐만 챙기는 게 좋아요. 순례자 길의 여정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허리와 다리에 무리가 생겨요. 결국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편리함과 익숙함을 내려놓지 못하면 고스란히 자신이 그 무게를 짊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요.

현지 수도원에서 지낸 5년은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은총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순례자 길에 오르기 전과 후로 인생이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수도원에서 봉사하는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어요.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과정이 5년 동안 반복됐으니까요. 하지만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인간으로서, 종교인으로서 성숙해졌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인연을 얻었어요.  


근본적인 힘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재력, 지위, 명예처럼 잃을 수도 있는 것들에 기대는 삶은 위험해요.
 진정으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게 무엇인지 찾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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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은 바뀌어야 한다

인영균 신부는 1994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수많은 이들과 기도하고, 사회의 평화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건장한 청년이었던 그는 어느덧 머리와 수염이 희끗한 중년이 됐다. 30년 가까이 흘렀지만, 사제 서품을 받던 날 신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한평생 욕심을 버리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살겠다는 마음이 그것이다.

초심을 기억하는지요?
초심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고 있으니까요.(웃음) 다만 사제 서품을 받으면서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고,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에 있겠다고 다짐했던 것을 이행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절대 변해선 안 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왜 신부가 됐나요?
어렸을 때부터 신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 외의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죠. 제가 신부가 되기로 했던 이유와 인생의 방향성은 저 자신보다 하느님이 더 잘 아실 겁니다.

30년을 성직자로 살아왔습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제가 걸어온 길이지만, 돌아보면 주님이 저를 업고 오신 거였어요. 제 힘으로 한 일보다 주님이 이루신 게 더 많다고 생각해요. 산티아고 순례길도 처음엔 신부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지만, 제 인생에 큰 선물로 남았어요. 신부로 살아온 30년의 시간에서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죠. 수천 명의 순례자를 만나면서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하느님에 대한 신뢰가 더 커졌어요. 앞으로의 시간은 5년간 순례자 길에서 깨달았던 은총을 베풀면서 살아갈 거예요.

신부란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존재입니다. 요즘은 어떤 기도를 하나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희생된 생명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적 상관없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청년이 많아요. 부디 비극적인 상황이 종결되길 바랍니다.

반대로 신부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텐데 어디에서 위안을 얻나요?
수도원 형제들과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주고받아요. 그래도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위안처는 하느님이에요. 하느님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온전히 위로받아요. 제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분이라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는 세상입니다.
누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요. 그만큼 살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미니까요.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찾아와요. 그 상황에 절망하고 혼자 주저앉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둘러보면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 가운데 인생이 고달파서 그곳으로 떠나온 사람이 많았어요. 해방감을 얻기 위해 순례자 길을 걷고, 그 과정을 통해 내면을 갈고닦아 평온한 마음으로 목적지에 다다르는 경우도 많이 봤죠.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현대인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희망과 신뢰요. 개개인의 삶과 세상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과 믿음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또 나를 살아가게 하는 근본적인 힘에 기대면 어떤 절망과 좌절에도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 근본적인 힘이란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재력, 지위, 명예처럼 잃을 수도 있는 것들에 기대는 삶은 위험해요. 진정으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게 무엇인지 찾길 바랍니다.

인영균 신부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하늘 순례자가 되는 것이요. 지상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제 최종 목적지는 하늘이에요. 삶이라는 길 위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손을 잡고 끊임없이 봉사하면서 꽃길을 만들어 가려고 해요. 제가 걷는 길을 꽃길로 만들어 제 뒤를 걷는 사람들이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이 찾아와요. 그 상황에 절망하고 주저앉지 마세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분명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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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지다영, 인영균 신부 제공
2022년 12월호

2022년 12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지다영, 인영균 신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