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인천에서 시작된 은퇴 콘서트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LAST CONCERT)>는 청주, 울산, 창원, 천안, 원주, 전주로 이어졌다. 상반기 공연을 2024년 7월 6일 전주에서 마무리한 가수 나훈아는 7월 29일 하반기 투어 일정을 발표하며 “시원섭섭할 줄 알았는데 시원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하반기 일정은 대전, 강릉, 안동, 진주, 광주, 대구를 거친 뒤 2024년 12월 14〜15일 부산 벡스코로 이어졌다. 애초 계획은 자신의 고향인 부산에서 은퇴하는 일정이었는데 여기서 나훈아는 한 차례 은퇴를 번복(?)했다. 2024년으로 끝날 줄 알았던 나훈아의 가수 인생이 2025년까지 이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 바로 마지막 서울 공연이다. 그렇게 나훈아는 가수로 살아온 59년여의 길 종착점에 섰다.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습니다”
‘가황’ 나훈아의 마지막 무대는 2025년 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5차례에 걸쳐 열렸다. KSPO돔은 회당 1만 5,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규모지만 무대 뒤편 객석을 활용할 수 없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수용 관객은 회당 1만 2,000명 정도다. 그렇게 나훈아가 3일에 걸친 서울 공연에서 만난 팬은 6만여 명이다. 당연히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이 불가피했다. 6만 석이 단 5분 만에 매진됐다.
나훈아의 마지막 서울 공연 레퍼토리는 ‘고향역’으로 시작됐다. 공연은 기차가 등장하는 영상으로 시작됐는데 기차는 1967년에서 출발해 2025년에 멈춰 섰다. 1967년은 나훈아가 데뷔한 해다. ‘체인지’, ‘고향으로 가는 배’로 이어진 무대는 ‘물레방아 도는데’로 계속됐다. ‘물레방아 도는데’는 듀엣 무대였는데 무대 위 나훈아와 영상 속 1986년 무대 위의 나훈아가 호흡을 맞춰 노래를 완성했다. ‘18세 순이’, ‘무시로’, ‘사랑’, ‘영영’, ‘청춘을 돌려다오’, ‘남자의 인생’, ‘테스형’ 등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나훈아의 히트곡, 아니 명곡들이 무대 위에서 이어졌다. 나훈아는 ‘트로트의 황제’로 유명한 가수지만 작사와 작곡에도 빼어난 실력을 선보여 온 싱어송라이터다. 공연에서 나훈아는 자주 “1,200곡을 발표하고 95%를 직접 썼다” 고 말하곤 할 정도로 자신의 노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한 가요 관계자는 “나훈아는 정말 주옥같은 노래를 많이 만들어 큰 사랑을 받은 가수라 마지막 무대에서 부를 노래의 세트리스트를 정하는 게 더 힘들었을 것이다”라고 얘기했을 정도다.
나훈아는 공연 무대에서 정치권을 향해 거침없는 목소리를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공’을 부르며 간주가 나오는 동안 만담을 들려주는 게 나훈아 공연의 유명한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데, 민감한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2024년 12월 7일 대구 공연에선 ‘공’을 부르다 간주에서 비상계엄에 대해 언급했다. 나훈아는 “요 며칠 전 밤을 꼴딱 새웠다. 공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됐다. 집회가 금지된단다. ‘우짜면 좋노’ 싶더라. 새벽에 계엄 해제가 되는 걸 보고 술 한잔하고 잤다”라며 “국회의사당이 어디고? 용산은 어느 쪽이고? 여당, 야당 대표 집은 어디고?” 라고 말했다.
지난 1월 10일 서울 공연에선 “이제 그만하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할라 캤는데 나가 요새 갑자기 방향 감각이 없다. 오른쪽이 어데고, 왼쪽이 어데고? 왼쪽이 오른쪽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 직이고 있다. 니는 잘했나?”라며 “형과 나는 노상 싸웠습니다. ‘둘 다 바지 걷어라’ 하고 동생도 형도 패뿌렸습니다. 까막눈인 우리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 이 세상 두 개의 논리를 하나로 만들며 ‘형제가 싸우면 안 돼’라고 하셨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너거가 지금 하는 꼬라지가 국가를, 국민을 위해 하고 있는 짓거리인지?”라고 일갈했다. 이런 나훈아의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서울 공연에서의 발언을 두고 양비론에 대한 지적이 상당히 거세게 일기도 했다. 그러자 1월 12일 공연에서 ‘공’을 부르는 과정에선 “여러분이 저한테 뭐라고 하시면 ‘그렇습니다’라고 인정하겠다. 그런데 저것들이 뭐라고 하는 것은 내가 절대 용서 못 하겠다”라면서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 어디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XX들을 하고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이런 논란은 나훈아가 가수 시절에 했던 발언에서 불거진 것이지만 이제 더 이상 가수 나훈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0개월 동안 이어진 은퇴 투어 마친 가수 나훈아…. 드론에 마이크 실어 보내며 무대 떠나
나훈아의 말말말, “어디 어른이 얘기하는데…”
나훈아의 서울 공연 마지막 곡은 ‘사내’였다. 요즘 나훈아는 “사내답게 갈 거다”라는 가사를 “훈아답게 갈 거다”로 바꿔 부르곤 했는데 마지막 무대에서도 같았다. 그러곤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드론에 실어 보냈다. 그렇게 나훈아는 마이크를 손에서 놓았다.
사실 은퇴를 선언했던 연예인들이 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구로 다시 컴백하는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이런 조건이라면 나훈아는 이미 충족됐다. 공연 내내 팬들이 “은퇴하지 말라!”고 외쳤을 정도로 팬들은 여전히 열렬히 은퇴를 반대하고 있다. 그가 다시 공연 계획을 내놓는다면 당연히 또 5분 이내에 매진될 것이다. 그렇지만 가요 관계자들은 적어도 나훈아는 절대 은퇴를 번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서울 공연에서 나훈아는 “저는 구름 위를 걸으며 살았습니다. 별이었기 때문에 스타니까”라며 “그게 좋을 것 같아도 사람이니까 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땅에서 걸으며 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마이크 놓는다’는 이 결심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나훈아를 잘 아는 한 가요 관계자는 “그의 말처럼 본인은 땅에서 걸으면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다”며 “그 뜻을 완성한 만큼 다시 무대로 돌아오진 않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5회로 마련된 이번 서울 공연은 팬들과의 작별의 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훈아는 마지막 곡 ‘사내’를 마친 뒤 관객들 앞에 무릎을 꿇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마지막의 마지막인 1월 12일 오후 7시 30분에 열린 5회 차 공연의 끝자락에선 결국 나훈아가 눈물을 쏟아냈다. 다시 한번 무대 위에서 팬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결국 나훈아는 오열했다. 그렇게 진심을 다한 마지막 무대로 나훈아는 59년여의 기나긴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