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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마음, 서혜진

tvN <알쓸범잡2>의 홍일점, 서혜진 변호사를 만났다

On March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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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슈트·벨트 모두 딘트, 골드 체인 드롭 이어링 리타모니카.

tvN 예능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2>(이하 <알쓸범잡2>)에서 유창한 언변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서혜진 변호사. MC 윤종신, 프로파일러 권일용, 물리학자 김상욱, 작가 장강명 사이에서 유일한 여성 패널로 활약 중이다. 방송에서 서혜진은 분노를 일으키는 사건에도 차분함을 잃는 법이 없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해석한다. 말에 살을 붙이지 않음에도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지난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201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주로 여성 폭력 사건의 일선에서 피해자를 대변한다. 현재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 대검찰청 양성평등위원회 위원,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 자문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그에게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점심 직후 시작된 인터뷰는 해가 질 때서야 마무리됐다. 준비한 질문지를 덮어두고 사는 이야기가 오갔다. 대중이 그에게 매료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tvN <알쓸범잡2>의 새로운 패널로 합류했어요.
대중성이 부족한 저를 섭외하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했어요. 미팅 장소에 갔는데 메인 PD, 메인 작가 등 제작진 세 분이 나오셨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자리였는데 일이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죠.(웃음) 제작진이 말하길 기존에 언론사와 진행했던 인터뷰와 뉴스에 출연했던 영상을 보고 함께하면 좋을 거 같다고 판단했대요. 사실 남편이 <알쓸범잡1>을 보면서 “곧 출연 섭외 연락이 올 거 같지 않아?”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실현돼서 놀라웠어요. 시즌1 방송분을 전부 챙겨 보지는 못했지만, 종종 볼 때마다 사건을 객관적으로 다룬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인상으로 남은 프로그램에 합류하게 돼서 감사해요.

방송 출연을 결심한 이유가 궁금해요.
프로그램의 취지가 좋았어요.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다루고 싶다 하더라고요. 범죄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점이 아쉬웠던 저에겐 반가운 이야기였죠. 그동안 피해 자문을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겠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어요.(웃음)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기대했던 방송의 취지와 잘 맞게 흘러가고 있나요?

저에게 법률 자문을 받았던 피해자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저를 보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를까 봐 걱정됐어요. 그럼에도 우리나라에는 억울한 사건의 피해자를 돕는 다양한 제도가 있고, 그들을 도와줄 변호사가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널리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어요.

방송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촬영하면서 큰 공부가 돼요. 직접 맡았던 사건뿐만 아니라 알고는 있지만 어떤 판결이 내려졌는지 모르는 채 지나쳤던 사건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니까요. 주로 아동 학대나 여성 폭력 사건을 맡다 보니 새로운 분야의 사건과 그 일련의 과정을 보는 게 새롭더라고요. 또 제가 변호사가 되기 전 발생한 사건과 판결을 보면서 지금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배우게 돼죠.

패널들과의 호흡은 어떤가요?
상대방의 말에 굉장히 집중해요. 물리학자, 작가, 프로파일러, 법조계까지 몸담고 있는 분야가 전혀 달라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요. 방송은 회당 1시간 20분인데 한 번 만나면 8시간 정도 대화를 나눠요. 꽤 긴 시간임에도 항상 기대되고 흥미로워요. 매회 주제가 정해져 있지만, 촬영장에서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몰라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방송의 화제성과 더불어 서혜진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웃음)
생활 속 안전에 관심이 많은 변호사라고 소개하면 좋을 거 같아요. 여성 폭력, 아동 학대 피해에 대한 자문에 응해오다 보니 저를 인권 변호사로 아는 분들이 있어요. 따져보면 모든 변호사가 인권을 위해 일해요. 삶에서 겪은 억울함, 부당함을 변론하는 역할이죠. 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지난 2017년 ‘미투 운동’이 화두였던 시기부터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들의 변호인으로 이름을 알렸죠.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일회성 피해가 없고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정도가 심각해지더라고요. 또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가해자를 조력하고 방관하는 세력이 있어 가해 행위가 암묵적으로 용인돼요.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피해를 당해도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거예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들면, 서울시는 각 기업에서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성폭력 대응 매뉴얼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어요. 그런데 내부에서 시장이 가한 폭력에 대해서는 모두가 침묵했죠.

변론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릇된 인식을 마주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대표적으로 “왜 뒤늦게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이냐”, “왜 피해를 당하고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냐”면서 고발의 목적을 의심하는 말을 들어야 했죠. 또 권력형 성폭력은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어요. 피해자가 기억을 잘하는 편이라고 해도 밥 먹듯이 발생하는 범죄를 일일이 기억할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가해자의 권력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공포라는 거예요. 그래서 고발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마음고생을 굉장히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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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 슈트·벨트 모두 딘트, 골드 체인 드롭 이어링 리타모니카.

“육아,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는 것”

지난 2014년 변호사 남편과 결혼해 슬하에 두 아이를 둔 서혜진. 그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8살 딸과 3살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서혜진은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하는 육아를 실천하고 있다. 모든 엄마가 그렇듯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법률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이 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고자 한다. 서혜진에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정에 대해 물었다.

휴대전화 배경 화면이 아이들 사진이네요.(웃음)
정말 귀엽고 그만큼 힘들어요. 아이를 키우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조력자가 없으면 복직 고민조차 힘든 상황이죠. 저도 남편이나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을 다시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거예요.

남편의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인가 봐요.
육아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육아관이 일치하고 상황적인 부분이 맞춰져야 가능한 일이죠. 반대로 남편이 바쁠 땐 제가 육아에 전념해요. 만일 육아에 대한 인식에 차이가 있거나 서로 아이를 돌봐야 할 때 합의가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결혼하지 못했을 거 같아요.(웃음)

아이들은 바쁜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직 어려서 이해를 구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엄마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꾸준하게 설명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엄마만 찾지 않아요. 아빠가 바쁘면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엄마가 바쁠 땐 아빠를 찾아요. 덧붙이자면 첫째 아이를 출산하기 3일 전까지 구치소를 오가면서 일했어요. 출산을 경험한 선배들이 “아이 낳으면 꼼짝도 못하니까 힘이 닿는 데까지 일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낳아보니 선배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군요. 그래서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출산 직전까지 스케줄을 다 정해놨어요. 할 수 있을 때 일을 하나라도 더 하고 싶은 마음이었죠.

엄청난 워커홀릭 같아요.(웃음)
사실 첫째를 낳고 굉장히 우울했어요. 제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동안 지인 변호사들이 큰 소송을 진행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복직한 뒤에 일에 매진했어요.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갔죠. 그러다 보니 먼저 저를 찾아주는 이들이 생기더라고요.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는 게 참 힘들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돌봄에 대한 어려움이 더 커졌잖아요. 하지만 나만 힘들다는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양이 다를 뿐이지 모두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책하거나 스스로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길 바라요. 너무 막막하고 힘들 때는 잠시 모든 걸 내려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 거 같아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고요.

사람의 일을 다루다 보니 감정적으로 힘들 때가 있을 거 같아요.
피해자의 변론을 맡는 변호사로서 고충이 있어요. 변호인을 가해자가 선임했을 때와 피해자가 선임했을 때의 기대치가 다르거든요. 가해자는 잘못한 부분이 있으니 약간의 감형에도 만족도가 높은데,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일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에게 요구하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어요.

반대로 보람찬 순간은 언제인가요?
변호를 맡았던 피해자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전할 때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맞바꾸지 않을 순간이죠. 그리고 의뢰인이 원하는 결론을 얻어냈을 때 행복해요. 변호사는 타인의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이라서 기본적으로 부채 의식이 있어요. 결과에 따라 짐을 덜어낼 수 있는지 여부가 달라지죠.

 


10~30대가 하는 생각, 감각, 관심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선 유대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서혜진의 인생에서 여성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여성 폭력과 아동 학대 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입지를 다졌다. 서혜진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여성 폭력 사건의 피해 변론을 맡아왔다. 김기덕 영화감독, 이윤택 연극감독, 고은 작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법률 대리인으로 나섰고 지금도 피해자 지원에 힘쓰고 있다.

여성 폭력 사건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로펌에 소속돼 있을 때 다양한 민·형·가사 사건을 맡았어요. 여러 갈래의 사건을 다루면서 여성 폭력 피해를 변론하는 일이 가장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처음에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성 폭력 범죄는 친고죄로 판결이 나거나, 소송 중 합의를 하고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왜 피해자가 신고를 하고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라는 물음을 갖게 됐어요. 피해자의 편에서 진술해줄 사람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끝으로 요즘 서혜진 인생에서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요?
나이가 들어가는 것?(웃음) 여성 폭력 특성상 피해자의 나이는 대부분 10~30대인데, 저는 해마다 나이가 한 살씩 늘어가요. 피해자의 세대로부터 멀어지면 피해자와의 관계도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말이 잘 통했는데 이제는 의무적으로 애써야 하는 시기예요. 그래서 10~30대가 하는 생각, 그들의 감각, 관심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의뢰인이 변호인에게 마음을 열기 위해선 유대감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마주 앉은 이를 매료하는 언변은 인터뷰에서도 돋보였다. 피해자에 대해 언급할 때는 똑 부러졌고 일상 이야기를 할 때는 편한 친구 같았다. 서혜진 이름 곁에 ‘신뢰’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는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박희경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미러미러 청담)
2022년 03월호

2022년 03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김정선
스타일링
박희경
헤어&메이크업
정일&송미(미러미러 청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