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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의 세계

전종서는 지금 충무로의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영롱하고 도발스러운, 낯선 보석.

On January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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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이창동 감독은 신예 전종서를 자신의 신작 <버닝>(2018)의 여주인공으로 발탁해 칸영화제에 동행했다. 당시 이 감독은 전종서를 이렇게 표현했다.

"처음 전종서를 보는 순간, 지금껏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10대부터 화보 촬영, 광고로 나오는데, 도대체 이 친구는 뭘 하고 지금까지 원석 그 자체로 있다가 내 앞에 나타났을까. 굉장히 뛰어난 잠재력을 가진 배우다."

그리고 2년여가 지났다. 넷플릭스 영화 <콜>로 돌아온 그녀는 이창동 감독의 심미안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대급 여성 빌런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영화 <콜>은 한 통의 전화로 연결된 서로 다른 시간대의 두 여자가 서로의 운명을 바꿔주면서 시작되는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다. 전종서는 1999년을 살아가다 2019년의 '서연(박신혜 분)'과 전화로 연결된 후, 연쇄 살인마로 변해가는 '영숙'을 연기했다. 영화 자체도, 전종서의 연기도 공개 직후 호평 일색이다.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전종서는 "고민이 많이 되거나 갸우뚱하게 되는 작품은 선택하지 않는데, <콜>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세계관을 자분자분 이야기했다.


영화 <콜>의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뭔가요?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시나리오가 지닌 색이 명확히 빨간색이었고요.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이 그려지면서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덧붙이자면 서연과 영숙의 평행 이론적 관계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가져가는 장면이 대다수인데 그런 부분이 화끈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값>(2015)을 보고 (작품성에) 깜짝 놀랐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어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데 촬영할 때는 어땠나요? 긴장하거나 떨리지는 않았어요. 단지 영숙이라는 캐릭터가 전형적이지 않아서 어떻게 소화할까 하고 고민이 컸죠. 관객에게 영숙이라는 캐릭터를 설득해야 하니까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영숙의 행동 하나하나에 타당성을 찾아가려고 노력했어요.


연기에 대한 극찬이 많아요. 영숙이라는 캐릭터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녀스러움, 강함, 약함, 순수함, 잔인함. 그러면서도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걸요. 감정이 세세하게 잘려 있는 만큼 관객의 반응 역시 다양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라는 걸 느껴줘서 좋았어요.


극 중 캐릭터의 웃음소리가 독특해요. 기괴하다고 할까요? 사실 웃음소리는 시나리오상엔 적혀 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촬영하면서 영숙이라는 캐릭터가 제 안에서 더 선명해졌어요. 천진난만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라 악동 같은 웃음소리가 어울릴 거란 생각이 들었나봐요. 저도 모르게 그 웃음소리가 나왔어요.


캐릭터의 감정 폭이 커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연기했나요? 대본을 잘게 잘라서 세밀하게 분석하며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편이에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하루 종일 대본을 놓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그림을 맞추기도 했고요. 미리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 현장에선 그 느낌만 갖고 촬영했어요. 많은 생각을 갖고 촬영에 임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았거든요. 영숙은 아주 작은 감정과 상황, 툭 던지는 상대방의 말 등등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캐릭터예요.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고, 그 불씨를 점점 크게 굴려 결국 폭발하는 지경까지 만드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캐릭터 분석을 하는 '나만의 방법'도 궁금해요. 단순해요. 시나리오 안에 해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파고들어요.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엄마를 살인하고 집 밖으로 나오는 장면이오. 첫날 찍은 첫 촬영이에요. 바람을 정말 오랜만에 맞는 듯한, 빛이 없는 공간에서 쥐처럼 살다가 드디어 밖으로 나온 상황이었어요. 비트 있는 음악과 영숙의 독특한 걸음걸이,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잘 표현된 것 같아 마음에 들어요.


서연과 영숙이 전화로 싸우는 장면을 보면 실제로 싸우는 느낌이 들었어요. 상대 배역 없이 전화상으로 싸우는 연기는 어떻게 몰입했나요? 전화로 싸우는 장면을 찍는 날에는 미리 촬영 현장에 나와서 서로 대사를 주고받으며 맞춰봤어요. 그리고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스태프 뒤에서 몸을 가리고 연기했어요. 그러다 보니 감정이 고조되고 실제 통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촬영하면서 감정적·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영숙의 감정은 후반부로 갈수록 주전자의 물이 끓듯 온도가 계속 올라갔어요. 과격하거나 과열되는 장면을 연기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실제로 온몸에서 열이 나기도 했어요. 팔팔 끓는 느낌이랄까요. 촬영을 시작하고 2주 정도는 몸에 이상 증세가 있었고, 이후에 점점 적응해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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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됐다고 해서 생활이나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 예전에 자주 가던 장소도 자주 가고 그때 입었던 옷도 지금까지 입는 걸요.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요? 다른 영화나 캐릭터는 참고하지 않았어요. 참고하지 않은 이유는 그만큼 영숙이 독보적이길 원했기 때문이에요. 내 머릿속에서 나오거나 내 본능에 기대고 싶었거든요. 그런 '나의 것'이 감독님의 아이디어와 결합했을 때 나오는 '창의성'이 좋았어요. 아,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사진도 많이 봤고요. 특히 팝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많이 봤어요. 노래를 할 때 아티스트에게 풍기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약간은 기괴하지만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그러면서도 순수한 면이 있어요. 제가 빌리 아일리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솔직하고, 자기표현을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해요. 예상이 빗나가는 방식이랄까요. 그 부분이 영숙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국내에서는 재키와이라는 여자 래퍼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영숙스럽다고 느꼈거든요. 이번 작품은 음악에 많이 기댔어요.


작품 속에서 영숙은 서태지를 좋아하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사실 서태지는 제 세대에 있던 가수가 아니라 생소했어요. 너무 전설 같은 이름이라 알고는 있었는데 좀 더 가까이해야 했기에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봤어요. 잔잔하고 서정적인 노래보다 역동적이고 비트가 강한 노래를 줄곧 들었어요. 사실은 그룹 지오디(god)를 좋아해요.(웃음)


시즌2 제작에 대한 가능성도 있나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해 시즌2 제작을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 거 같은데, 후속 편에 대한 얘기는 현재까지 들은 게 없어요. 만일 후속 편을 찍는다면 박신혜 씨가 맡았던 서연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반대로 박신혜 씨가 표현하는 영숙도 궁금하고요.


상대 배우 박신혜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저는 경험이 적기 때문에 박신혜 씨가 지닌 안정감은 흉내 낼 수 없었어요. 그 부분이 빠져버렸다면 스토리가 위험해졌을지도 몰라요. 영숙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기 때문에 박신혜 씨도 연기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거예요. 근데 그게 연기적으로 전혀 티가 나지 않았어요. 끝까지 중심을 잡아줬어요. 덕분에 영숙도 일정한 속도로 갈 수 있었어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작품 선택의 권한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작품, 배역에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작품을 최대한 '전종서'스럽게 만들고, 그 캐릭터를 독보적으로 만드는 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죠. 앞으로도 창의력이 필요한 작품을 하고 싶어요.


전작인 영화 <버닝> <모나리자>에 이어 <콜>까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창조할 때 느끼는 감정이 어떤지도 궁금해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기에, 내가 투영된 어떤 캐릭터가 언제든 돌려볼 수 있는 필름에 담기는 거잖아요.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닌 영화, 즉 스토리가 담긴다는 게 제가 연기를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버닝>과 <콜>, 두 작품의 캐릭터가 강렬했어요. 앞으로 연기에 부담으로 작용할 법도 한데 어떤가요? 전혀요. 결국 에너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애씁니다. 두 캐릭터 모두 세다고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특히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나 문화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배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정서를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외국에 소개하고 싶어요. '총을 든 소녀' 같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 그러니까 킬러 역할도 해보고 싶고 부성애에 관한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일상적인 캐릭터도 해보고 싶어요. 평범한 20대 여자를 그리는 작품이오. 어떤 이유 때문에 선택을 꺼리고 조바심을 냈던 작품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거침없이 도전하고 싶어요. 물론 기존의 틀을 깨는, 그래서 파격적이고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캐릭터는 언제나 도전해보고 싶고요. '미친 영화'랄까요?


부연 설명을 하자면요? <버닝>도 그랬고 <콜>도 그랬듯이 좋은 의미로 미친 영화를 하고 싶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든 연기를 하는 배우든 눈치 보지 않고, 조심하거나 두려워서 건드리지 않았던 것을 많이 깨뜨리는 영화요. 어떤 장르든 깜짝 놀랄 수 있는 모습에 도전하고 싶어요.


뭐랄까, 신비주의 이미지예요. 언젠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이뤄졌어요. 눈떠보니 <버닝>에 캐스팅됐고, 정신없이 지냈어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져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싶긴 하지만, 제게 1번은 연기예요. 그 외에 부수적인 건 제가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라 대중이 사랑해주는 만큼 다가갈 용기가 날 것 같아요.


연기자 전종서와 일상의 전종서는 많이 다른가요? 배우가 됐다고 해서 생활이나 생각이 달라진 건 아니에요. 예전에 자주 가던 장소도 여전히 자주 가고 그때 하던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자주 입었던 옷도 지금까지 입어요.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나요? 그런 생각, 해본 적 없어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바꾸고 싶어요.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미래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관심사는 뭔가요? 언제까지 축구를 즐겨 볼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에 해외 축구를 보기 시작했어요.(웃음)


한편 전종서는 독립영화계의 기대주 정가영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 <우리, 자영>으로 곧 다시 관객을 찾아올 예정이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
2021년 01월호

2021년 01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