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PEOPLE

PEOPLE

故 이어령 전 장관 아내 강인숙 관장 인터뷰(3)_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이와 눈을 처음 마주쳤을 때

그러니까 기자가 마지막으로 평창동을 찾은 것은 ‘평창동 터줏대감’ 이어령 전 장관과의 식사 자리였다. 이 전 장관이 없는 평창동의 겨울은 유난히 차디찼다. 그의 아내 강인숙 관장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On March 01, 2023

3 / 10
/upload/woman/article/202302/thumb/53143-509920-sample.jpg

 

“내 마지막 모습은 쉬러 가는 자의 뒷모습이었으면”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여성은 베푸는 자여서 좋아요. 생명을 낳고 살리잖아요. 하지만 자기 품격은 스스로 지켜야죠. 아주 싫은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해주고 앙심을 먹는 것보다는 싸우고라도 안 하는 편이 후유증이 적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육아 후의 세월이 길다는 걸 기억하세요. 위로가 될 겁니다. 그리고 여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마세요. 남자들도 사는 게 힘들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결혼은 꼭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안 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제인 오스틴 때만 해도 결혼은 생계 해결 방안이었거든요. 요즘은 여자도 자립할 수 있잖아요. 반대로 말하면, 그래서 요즘이야말로 결혼할 상대를 찾아내는 게 축복이에요. 동기가 순수하니까.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결혼할 수는 없으니 아기를 낳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가야죠.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도 있을까요?
말은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자기가 스스로 깨달은 것만이 자기 것이지요. 그래도 경험해본 자의 말이니 참고는 되겠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면 좋겠네요. 자기 앞의 삶을 사랑하고요.

최근에 새로 생긴 관심사가 있으신가요?
죽음 앞에 선 사람의 심리 탐색이요. 그분들에 대한 이해가 더 커지고 있어요. 우리 할아버지가 예전에 돌아가실 무렵에 자꾸 바지를 자르시는 거예요. 가족 모두 할아버지가 병이 나서 그런 줄 알았어요.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는데 한복 바지를 잘라놓으니 다들 미워했지. 한데 이 선생님 때 보니까 옷이 무거워서 못 입는 거였어요. 할아버지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정을 떼고 가야 하는지도 곧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관장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은 언제입니까?
내 아이의 눈을 처음 마주쳤을 때. 그건 아이마다 절정이죠. 그래서 옛날분들은 아이를 많이 낳았나 봐요.

관장님이 바라는 관장님의 마지막 모습도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조용히 갔으면 해요. 쉬러 가는 자의 뒷모습이었으면 하죠. 우리가 피곤하면 잠자리에 들 때 ‘아, 편하다’ 하잖아요. 그렇게 죽으면 좋겠지요. 아닌 말로 안 죽어도 큰일이에요. 안 그러면 자식들이 일흔 살까지 자식 노릇을 해야 해요. 살아 있는 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폐를 덜 끼쳐야죠. 못 움직이면 어차피 폐를 끼쳐야 하니까 되도록 귀찮게 안 하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2023년을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요?
밀려오는 대로 밀려가는 것 같아요. 작년에도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는데 잘 새가 없이 살았어요. 그렇게 또 밀려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혹시나 하늘에서 이 전 장관을 만나게 되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그동안 뭐했어요? 어떻게 살았어요?” 하고 묻겠지요.(웃음) 한데 그런 세월은 없을 것 같아요. 박완서 선생이 “천국에서 만난들 형체가 없으면 무엇으로 알아보나”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내 소원대로 한다면 내 마지막은 재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가 없어져 버리면 좋겠어요. 그걸로 끝나면 좋을 것 같아요. 죽음이 그냥 종말이 되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만큼 살았으면 이제는 끝내야죠.


강 관장은 이 모든 이야기를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이어갔다. 유난히 춥게 느껴진 평창동의 겨울이었다.
“이 집에서 숨을 거두고 싶다. 이왕이면 송홧가루가 시폰 숄처럼 공중에서 하느작거리는 계절이면 좋겠다.”
강 관장의 에세이 <글로 지은 집>의 마지막 구절이다.

CREDIT INFO

취재
하은정 기자
사진
하지영, 서울문화사 DB, 열림원 제공
2023년 03월호

2023년 03월호

취재
하은정 기자
사진
하지영, 서울문화사 DB, 열림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