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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노동자, 한동일

어느 때보다 세대 갈등이 고조된 사회.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는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필요한 건 서투른 위로가 아니라 이해라고 말한다.

On January 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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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라틴어 수업이 있다. 언어의 기원, 문법을 이야기하며 인간사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조명한다. 제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었다. 교수는 학생들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다. 인생에 남기고 싶은 것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물었다. 학생들은 그동안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열린 한동일 교수(전 로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의 라틴어 수업은 풍부한 지식과 깊은 고찰을 전하는 인문 교양 수업으로 입소문을 탔다. 인근에 있는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등 다른 학교의 학생들과 일반인까지 그의 수업을 청강하기에 이르렀다. 수업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책 <라틴어 수업>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2017년 출간 이후 100쇄를 넘기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일본에선 출간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영예를 안았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식인 한동일 교수를 만났다.


강의 자료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건 드문 일입니다.
처음엔 저도 그 이유를 몰랐어요. 책을 집필할 당시 마음이 편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강의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한 번의 강의가 끝나면 그다음 강의를 위해 또 공부했으니까요. 수업 내용이 비슷해도 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어요. 루틴이 읽히는 수업만은 피하고자 했죠. <라틴어 수업>을 출간할 때는 주관적인 감정을 모두 덜어내고자 했어요. 온전히 정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길 바랐거든요. 책이 출간된 뒤에 타 대학 교수님과 많은 선생님들에게 연락을 받았어요. 자신이 고집해온 수업 방식을 다시 고민해보게 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거 같아 뿌듯합니다.

<라틴어 수업>뿐만 아니라 <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의 공부법> <법으로 읽는 유럽사> <로마법 수업>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요즘은 작가로서 활동이 더 활발하죠.(웃음)
한 번도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썼던 적은 없어요.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죠. <라틴어 수업>도 마찬가지예요. 기존 교재들을 살펴보는데 라틴어 초기, 라틴어 첫걸음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밖에 없어서 아쉬웠어요.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였어요. 단순히 설명을 하는 게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넣으면 이해가 더 쉬울 거 같았죠.

서평을 찾아보면 ‘위로를 받았다’는 반응이 잇따라요.
제게 누군가를 위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웃음) 학생들에게 유익하겠다 싶은 이야기로 수업 내용을 구성했어요. 삶의 태도를 어떻게 정비해야 할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할지 등 학생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은 질문을 곁들였죠. 감사하게도 학생들이 제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반짝이는 눈으로 수업에 임하더라고요. 아마 독자들도 학생들과 같은 마음으로 책을 읽은 게 아닐까 싶어요. 제 수업과 책이 위로가 됐다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오히려 그 빛나는 눈을 보면서 제가 위안을 받았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위로를 주는 스승이 됐군요.(웃음)
학생들이 저를 찾아오는 일이 잦았어요. 주로 공부나 진로 고민을 안고 있는 학생들이었죠. 저를 찾아온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확신을 주는 일이었어요. 이미 수많은 고민을 거치고, 어느 정도 답을 내렸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해답을 제안하기보다 학생들이 결정한 부분을 응원하고 어떻게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게 제가 선생으로서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믿었어요.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느낀 바가 있나요?
물리적인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른이 아니더군요. 저보다 사고가 앞선 사람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어른이에요. 어른이라는 건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간혹 강연에서 젊은 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라는 주문을 받는데, 그보다 불편한 상황이 없어요.(웃음) 우리 사회를 보면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어떤 위로와 격려를 해야 할지 고민해요. 그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게 우선이에요. 어른은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청년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아래 세대가 겪는 어려움이 개인의 문제인지, 사회의 문제인지 같이 고민하는 주체예요. 청년들이 겪는 고충이 개인의 문제라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사회의 문제라면 함께 해결 방안을 찾아야죠.

말씀하신 것처럼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 갈등이 심화되는 거 같습니다. 이해의 첫걸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우선 화를 덜어내야 돼요. 분노가 없는 문장만이 울림을 줄 수 있으니까요. 부모가 자식에게 건네는 충고가 잔소리로 들리는 건 말 속에 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같은 이야기를 해도 화가 섞여 있으면 소통할 수 없어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인가요?
맞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려고 노력해야 해요. 가장 필요한 건 유연한 사고입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문제와 고민을 해결하는 열쇠는 유연함이에요.

배움엔 끝이 없다

아시아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된 한동일 교수.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되는 길은 고단하기로 정평이 났다. 수많은 법률과 판례를 라틴어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난한 과정을 거쳐도 5~6%에 그치는 합격률 앞에서 좌절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한동일 교수에게도 이 과정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도전과는 달랐다. 수치로 나타낸 합격률에 골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고닦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비결이자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공부하는 노동자’라는 별칭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공부가 제 인생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어요. 처음엔 도피성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어요. 아픔이 켜켜이 쌓이던 중학생 때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 시간만큼은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죠. 현실에서는 남루한 제가 책 속에서는 대단한 사람이 된 거 같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어요. 지난 30년간 소위 ‘세븐일레븐’ 방식으로 학습했어요. 오전 7시에 책상에 앉아 오후 11시가 되도록 공부하는 루틴을 지켰죠.

공부를 통해 얻은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차원이 다른 학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옥탑방에서 살았던 청소년기에 옥상에 올라서서 동네를 바라봤어요. 가장 먼저 여러 개의 빨간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어요. 십자가의 개수를 세어보고, 그다음 시야에 들어오는 중학교의 개수를 세어봤어요. 학교의 수를 세면서 동네 중학교의 학생들을 전부 줄 세워놓으면 과연 나는 몇 등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봤죠. 그리고 국내에 있는, 미국에 있는, 유럽에 있는 모든 학생 중에서 몇 등을 할 수 있을지 헤아려봤어요. 생각하면 할수록 제 등수가 뒤로 밀려나더군요. 순간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의 경쟁이 불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깊은 차원의 배움을 통해 어디에서나 경쟁력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인생에서 공부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공부를 통해 자신이 가진 기량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저는 공부할 때만큼은 스스로 엄청난 천재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 최면이 사고방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켰어요. 책을 읽을 때 ‘이 많은 양을 언제 다 읽지?’가 아닌 ‘나라면 금방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또 당장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도 끝까지 한번 해보자고 결심했죠. 여유가 생기면서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회복됐어요. 생각의 차이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공부를 통해 깨달았어요. 공부로 얻은 지식은 사라지지 않아요. 그러니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걸고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어른의 공부란 무엇인가요?
통념을 깨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선 넓은 시야가 필요한데, 공부를 하면 시야가 확장돼요. 나이가 들수록 성취의 기준이 높아져요. 사회 초년기엔 일에 대한 열정이 큰데 점점 그 힘이 줄어들어요. 만족할 만큼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해 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성취를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래를 그려보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며 지금 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해요.

한동일 교수의 공부 비법이 궁금해집니다.(웃음)
10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요. 남들이 보기엔 다소 무모한 계획일 수 있지만 길게 바라보고 어떻게 미래를 그려나갈지 생각해요. 2001년 로마로 유학을 떠나 2010년 동아시아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의 변호사가 됐어요. 유학길에 올랐을 때만 해도 변호사가 될 거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행위가 공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 삶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하고 움직이는 모든 행위가 공부예요.

“애써 행복할 필요는 없다”

끊임없는 자기 탐구로 얻은 진리가 있다. 한동일 교수는 진정한 행복을 위해선 사회가 정의한 행복의 개념으로부터 멀리 떠나야 한다고 믿는다. 행복하기 위해 불행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동일 교수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갈망인 행복과 위로가 필요한 시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위로는 필요한 만큼만 받아야 해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워져요. 결국 자신의 자아가 충족되지 않으면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어요. 사막에서 길을 걸어갈 땐 최단 거리를 걷지 않아요. 오아시스(물)가 있는 곳까지가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거리죠. 오아시스가 있는 위치에 따라 더 걸을 수도, 덜 걸을 수도 있어요. 더 걸어야 해서 힘이 필요할 땐 사탕을 꺼내 먹으면 돼요. 하루 종일 사탕을 먹을 순 없으니 정말 힘들 때 한 개씩 먹고 힘을 내서 다시 걸어가는 거죠. 저는 이 사탕이 위로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고단한 순간에 맛보는 사탕과 위로는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죠. 과하면 탈이 난다는 것 또한 같아요.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인생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중요한 건 자신에게 찾아온 아픔을 어떻게 희석하느냐예요. 아픔이 이유가 돼선 안 돼요. 원하는 걸 하지 못한 이유,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 발전할 수 없는 이유 등 장애물로 남겨두면 삶의 고통이 가중돼요. 나를 구원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어요. 희망이 있다고 믿어야 살 수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희망을 가지는 태도를 ‘희망 고문’이라고 표현해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희망이 없으면 어떻게 살 수 있나요?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일수록 희망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어요. 힘든 자신에게 숨 쉴 창구가 돼주니까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경계인의 시선이요. 예수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 있는 경계인이었어요. 어떤 진영에도 속하지 않고 중간 지점에 있는 존재였죠. 어느 때보다 양극화가 심한 사회예요. 자신이 몸담은 진영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는 없는 것처럼 여기죠. 진영에서 빠져나와 다양한 것을 헤아리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인정하는 태도가 사람을 발전시킵니다.

한동일 교수는 어디에서 위안을 얻나요?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상황에 따라 위로를 받는 곳이 다르더군요. 어릴 적에는 책을 도피처로 여겼는데 지금은 달라요. 70살까지 제가 해왔던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더라고요.(웃음) 다른 위로의 창구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거죠.

마음에 품고 있는 문장이 있나요?
한 강연에서 “인생에서 뭘 남기고 싶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저는 무엇을 남기고 싶다기보다 절대 남기고 싶지 않은 게 있다고 답했어요. 바로 후회예요. 제게 후회할 일이 없다는 얘기냐고 더 묻는다면, 그 반대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거예요.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게 제겐 가장 큰 무언가를 남기는 것과 같아요.

끝으로 잘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3~4세기부터 ‘잘 살고 싶다’는 말이 있었다고 해요. 오래전부터 인생을 잘 살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는 거죠. 글쎄요. 그 답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헌법재판소에서 강연했을 때 일이에요.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부정했어요. 생각해보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개개인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든 거 같아요. 정말 행복하고 싶다면 만들어진 행복이 아닌 나만의 것을 찾아야죠.


희망이 있다고 믿어야 해요.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가지는 태도를 ‘희망 고문’이라고 표현해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희망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나요?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일수록 희망을 찾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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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교수는…

동양인 최초로 로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2010)를 지냈다. 서강대학교에서 라틴어 교수로 강단에 섰으며(2012~2016), 다양한 강연 무대에서 대중을 만나고 있다. <라틴어 수업> <믿는 인간에 대하여> <로마법 수업> <법으로 읽는 유럽사> <한동일의 공부법> 등을 집필했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하지영
장소제공
카페 인바이티드
2023년 01월호
2023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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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
사진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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