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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원피스를 입은 정치인, 류호정

정형화된 국회에 변화의 바람을 일게 한 국회의원 류호정.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당찬 그녀가 말하는 이 시대, 여성의 삶.

On October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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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더블 버튼 슈트 자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해야죠." 1년 중 국회가 가장 분주한 시기인 '2021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의당 류호정(30세) 의원을 만났다. 그녀는 특유의 맑은 미소와 사투리가 섞인 단단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인터뷰를 앞두고 국회의원 류호정이 주력하고 있는 일들을 살폈다.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권리, 각종 성범죄에 노출된 여성들, 존재하지만 사회에서 지워진 사람들의 스피커가 돼주는 역할까지.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누군가는 류호정을 파급력이 있는 이슈 메이커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단지 관심을 얻기 위해 퍼포먼스를 벌이는 인물이라고 한다. 어떻게 불린다고 한들 류호정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내기 위해 자신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다.


국회에서 가장 바쁜 정치인 중 한 명이라고 들었어요. 국회의원의 직무 가운데 의정 활동을 알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정의당 의석수는 300명 중 6명이죠. 기회가 있을 때 말하지 않으면 정의당 의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알리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국회의원이라는 직무를 부여해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게 제가 할 일이에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죠. 대부분의 국회의원이 중년 남성이다 보니 작은 행동을 해도 부각되는 것 같아요. 존재만으로도 튀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국회 본회의장에서 별 의도 없이 입었던 빨간 원피스가 주목받으면서 확실하게 깨달았죠. 그날 입은 원피스는 평소에도 즐겨 입는 옷이었고 화려하거나 특이한 옷이 아니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원피스를 입은 게 이상한 일이 아닌데 국회 안에서는 다르게 바라본다는 걸 느꼈어요. 이후 저의 의상을 언급하는 이들이 많아졌고요.(웃음)

타투업법 제정을 위해 입은 등이 파인 보라색 드레스, 채용비리처벌법을 이야기하면서 입고 등장한 노란색 셋업 추리닝도 파격적이라는 반응을 자아냈어요. 누군가에게는 튀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옷 자체에 시선이 집중되지만 곧 그 이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현행법상 불법인 타투업을 법제화하기 위해 타투 스티커를 붙이고 등이 파인 드레스 입었을 때 10년 동안 국회에 잠들어있던 타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수많은 타투이스트가 불법이라는 이유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에 돈을 갈취당하는 상황이거든요. 특히 여성 타투이스트들은 성범죄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어요. 결론적으로 저를 통해 절박한 심정인 분들의 이야기가 조명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어요.

국민에게 호불호가 뚜렷한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에요. 임기를 지내면서 기억에 남는 지지와 비판은 무엇인가요? "저의 편이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국회에 첫발을 디디면서 '권력이 없는 사람들 곁에 머무르자'고 다짐했어요. 그래서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하면서도 뭉클하죠. 그리고 "공부 좀 하라"는 쓴소리를 새겨듣고 말씀하신 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국회의원은 쉴 새 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국민의 의견, 생각, 사회에서 바뀌어야 하는 부분들을 끊임없이 알아야 하니까요. 저를 포함해 정의당 의원 6명은 오전 6~7시에 모여 스터디를 진행하고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학습해요.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하는 건 잠깐이지만 그 시간을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죠.

국회 내에서 류호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저의 존재가 익숙해진 거 같아요.(웃음) 초기에는 20대 여성이 의원일 리가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거든요. 국회 본회의장은 의원만 들어갈 수 있는데 제가 들어서려고 하자 "들어가면 안 된다"며 저지당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낯선 존재였는데 이제는 청년 여성 정치인이 국회에 있다는 걸 익숙하게 바라보는 분위기로 바뀌었어요.

'어린 여성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 거 같아요. 떼어내야 할 수식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에서 "청년, 여성 정치인으로서 어떤 의정 활동을 펼칠 것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어요. 중년 남성인 국회의원에게 "중년 남성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지 않잖아요.(웃음) 저와 정의당 의원들의 활동이 빛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식어가 삭제될 거란 기대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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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일이 곧 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이 저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거나 제가 입는 옷들이 쇼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셔도 신경 쓰지 않는 이유예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있다면 어떤 비난을 받아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권력의 반대편에 류호정이 있다

부당함의 이유,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설득이 필요한 이유, 류호정이 나서야 하는 이유. 그녀는 크고 작은 물음에 해답을 내기 위해 움직인다. 그 안에는 류호정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아픔이 담겼다. 그녀는 정계에 발을 들이기 전 게임업계에 종사했다. 창의적이고 자유롭다고 알려진 기업의 실상은 달랐다. 프로그램 기획 과정이 어긋나면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 부당 해고가 만연한 조직, 허락되지 않았던 노동조합 설립, 수직적인 조직 구조 안에서 발생했던 성폭력 문제, 위계질서 등 잘못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류호정은 그 상황을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었다. 부당함을 참다못해 회사 내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했던 그녀는 그 과정에서 권고사직으로 회사를 떠난다. 이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소속 선전홍보부장으로 활약한 류호정은 노동자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과 마주한다. 갑질을 당하고 수치스러운 모욕을 당하고도 생계를 위해 근근이 버텨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녀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류호정이 내린 결론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바람에 코웃음을 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더 나은 사회에 대한 갈망을 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제21대 국회의원(비례대표), 29세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회에 입성했다.


왜 하필 정치였나요? 필요한 법을 만들고 잘못된 법이 바뀌어야 일상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람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법이니까요. 게임 회사에 재직하고 있을 때 회사 내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어요. 관심을 갖고 알아가던 중 우리나라에서 노동조합이 기능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일일이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 법을 바꾸는 게 빠르겠더라고요.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고자 하는 행동은 곧 류호정이 과거에 느꼈던 부당함에서 비롯된 거였네요. 모두를 위한 일이 곧 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민주노총 선전홍보부장을 지내면서 절망스러운 날이 이어졌어요.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다가 단식농성에 돌입한 적이 있어요. 하루빨리 그 노동자의 간절함이 세상에 알려져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 중단되길 바랐어요. 그런데 한 언론에서 "단식을 진행한 지 열흘 정도 되면 연락을 달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림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하루를 굶어도 온몸에 기력이 약해지는 게 사람인데 열흘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생명에 지장이 생길 수 있고요. 그림 한 장을 위해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게 착잡하더라고요. 많은 분이 저의 행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거나 제가 입는 옷들이 쇼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셔도 신경 쓰지 않는 이유예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낼 수 있다면 어떤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아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류호정 하면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성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거예요. 궁극적으로 설명을 요구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개념이죠. 흔히 여성이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 "왜 여자가 군인을 해?"라는 질문을 듣고, 남성이 분홍색을 좋아하면 "남자가 분홍색을 좋아해?"라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가 규정한 성 역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그에 대한 질문과 설명을 요구받게 되는데 성에 대한 역할을 지우고 고정관념에서 탈피하면 개인의 선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죠.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입니다. 소란스러운 시기를 거쳐 큰 뜻을 이루는 게 민주사회의 모습이 아닐까요?(웃음) 지난 2019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을 당시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여성들의 연대로 높였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변화를 불러왔죠.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고 그 길에 제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과 육아의 균형, 경력 단절 등 30~40대 여성이 안고 살아가는 문제들이 있는데 이와 관련해 정의당은 어떤 논의를 진행하고 있나요? 여성의 자녀 돌봄을 하나의 노동으로 간주하고 일과 양육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사회에서는 여성의 가사를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엄연히 따지면 결혼과 출산, 육아를 도맡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출퇴근의 개념이 불분명해요. 회사에서 퇴근하는 게 아니라 집으로 출근하는 것이죠. 여기에 결혼, 출산을 한 여성을 업무에서 배제하거나 승진 시 불이익을 행사하는 부당한 일까지 비일비재합니다. 정의당은 노동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대의가 있어요. 여성의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받는 사회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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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넥 블라우스 바이바이섭, 벨트 디테일 블랙 와이드 팬츠 듀이듀이.

정치인 류호정, 사람 류호정

지난 1992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졸업한 뒤 평소 좋아하던 게임을 업으로 삼아 게임 기획자의 길을 걷게 된 류호정. 그녀도 "남들처럼 살면 된다"는 주위의 말처럼 사회가 규정한 평범함에 몸을 끼워 맞추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사회가 말하는 평범함에 고정관념이 담겼다는 것을 알게 된 류호정은 곧 서 있던 대열에서 이탈해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로 했다.


어머니는 정치인으로 사는 딸을 보고 뭐라고 말하나요? 평범하게 살면 안 되냐고 하세요.(웃음) 아마 어머니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은 좋은 대학 졸업해서 근사한 직장에 입사해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게 아닐까요? 사실 저의 의정 활동은 어머니의 삶과도 연결돼 있어요. 어머니는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면서 세 자녀를 키워낸 중년 여성이거든요. 저와 정의당이 발의한 노동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당장 저의 어머니의 삶도 나아질 거예요.

한마디로 류호정은 어떤 목소리를 내는 국회의원인가요? 일하는 시민을 위한 국회의원이요. 노동자만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각기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어요. 노동자에게 부여돼야 할 권리, 노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응당한 보상 등을 보호할 수 있는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나아가 권력이 없는 사람들 곁에 있었던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정치를 하면서 절대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해요. '힘이 필요한 이들에게 힘을 보태주는 정치를 하자'는 문장을 기억하면 정치에 입문하면서 다짐했던 것들을 흔들림 없이 이행할 수 있다고 믿어요.

오늘도 국회 앞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겁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리고 피켓을 든 분이 있으면 문구를 들여다보고 생각해요. 한 분 한 분의 일상을 바꾸는 일이 곧 사회를 바꾸는 일이라고 믿어요.

어떤 세상이 오길 고대하나요?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노력하면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요.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족을 만났을 때 "적당히 벌어서 먹고사는 게 꿈이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죠. 거창한 꿈을 전부 이뤄드릴 순 없지만 적어도 내 노력으로 행복을 손에 쥘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행동할 거예요.


국회의원 류호정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함께'다.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앞장서 팔을 걷어붙일 준비가 돼 있다. 연대를 무기 삼아 한 발 더 나아갈 류호정의 내일에 기대가 모인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이대원
스타일링
최영주
헤어&메이크업
정일, 송미(미러미러 청담)
2021년 10월호

2021년 10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이대원
스타일링
최영주
헤어&메이크업
정일, 송미(미러미러 청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