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네이버 포스트 네이버 밴드 유튜브 페이스북

통합 검색

인기검색어

HOME > ISSUE

ISSUE

문화평론가 김갑수, 졸혼의 이해(4)_100세 시대, 멋있게 혼자 살 용기

10년 넘게 졸혼 생활을 즐기는 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졸혼에 대하여.

On May 12, 2023

요즘 졸혼하고 싶은 사람이 많은데, 졸혼 전에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졸혼의 핵심은 각자의 경제적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배우자를 쳐다만 봐도 경기가 날 정도로 싫다면 경제적 독립이 안 되더라도 당장 따로 사는 게 낫죠. 그런데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고 졸혼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어떤 투쟁을 해서든 재산 분할을 해서 경제적 독립 상태가 된 다음에 졸혼하는 것이 좋아요. 또 전통적 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사실 아내 입장에서 보면 남편에 대한 의무감보다는 남편의 가족 구성원, 시댁에 대한 의무감이 더 많은데 그쪽과 절연할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명절에만 간다, 시부모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같은 것들이죠. 졸혼이란 게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거잖아요. 내 방식으로 삶을 구축할 수 있어야 졸혼으로서 의미를 갖는 거죠.

100세 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졸혼하든 졸혼하지 않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할 거 같아요.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인간관계를 끊어야 해요. 이건 제가 정말 강조하고 싶은 말인데, 한국 사회가 이만큼 성장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에 대해 혼자 공부도 해보고 숙고도 해보고 남들에게 물어도 봤어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자기 혼자 사는 게 안 되기 때문이에요. 일주일에 저녁 약속이 다섯 건, 여섯 건 있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로 살면 그건 불행할 수밖에 없어요.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자기를 돌아볼 시간과 여유가 없어지죠. 어떻게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해요. 그 시간에 증권 시세, 같은 걸 보는 게 아니라 아무런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몰두하는 거죠.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는 것과 비슷한 거네요.
뭔가에 몰두하는 게 필요해요. 인간은 잘 살려고 사는 게 아니라 멋있으려고 사는 거예요. 남들이 멋있다고 인정해주는 건 관심 갖지 말고, 나 스스로 멋있어야 해요. 한 예로 내가 얼마 전에 밀랍초 만드는 걸 유튜브에서 보고 배웠어요. 혼자 다양한 모양의 초를 만들어 쭉 늘어놓고 불을 켜면 그것만큼 멋있는 게 없어요. 시구절도 있잖아요. “산중의 저 꽃. 저 혼자 아름답고 저 혼자 빛난다.” 누가 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이죠. 핸드 드립을 배우든,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든,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나든. 인간관계에서 해방돼 자기가 즐길 거리를 찾으면 돼요. 지금 내가 좀 가난하다고 해서 즐거움을 못 찾는 건 아니에요. 어떤 영역을 10년 정도 파고들면 돈을 안 들이고 혹은 아주 저렴하게 즐겁게 노는 방법을 알게 돼요. 저 역시 빈티지 오디오를 오래 가까이하다 보니 원래 오디오의 반값에, 때로는 그보다 더 저렴하게 얻는 방법을 터득했거든요.

마지막으로 졸혼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뭘까 많이 생각해봤어요. 용기 같아요. 전통적 관념으로부터,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사회나 가족의 강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물론 선행 요건은 경제적 자립이죠. 결혼 관계를 청산하는 형태, 그러니까 이혼 같은 건 이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가족은 그저 허울 같은 거예요. 졸혼처럼 각자 따로 살면서 법률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형태 같은 것이 앞으로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너무나 사랑하는 상대가 생긴다면 그때는 이혼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죠. 졸혼하고 다른 사람과 동거하거나 하면 더 복잡해져요.(웃음) 중요한 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될 수 있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김동완
2023년 05월호

2023년 05월호

에디터
하은정
취재
박현구(프리랜서)
사진
김동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