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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고 아름답게! 왕가위, 클릭!

왕가위 감독의 작품을 논스톱으로 보는 주말은 완벽하고도 아름답다.

On April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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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픈 초창기엔 아예 TV를 끊어버리고 넷플릭스만으로 충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펼쳐지기 전 ‘두둥~’ 하는 시그너처 사운드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던 그 시절. 나는 주로 ‘감독’을 편식해 작품을 선택한다. 한 달 내내 한 감독의 세계관에 푹 빠져 염탐하는 식이다.

나는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인 홍콩 영화를 보고 그해 크리스마스를 홍콩에서 보내기도 했다. 홍콩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오래된 팬이다. 그는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감각적인 비주얼과 독특한 화면 전개로 천재 감독이라 불리지만 사실 그의 진정한 강점은 주인공의 정서를 담아내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내레이션이다. 그 내레이션은 참으로 시적이고 철학적이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감정을 담는다. 그것이 또 수많은 왕가위 모작이 실패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줄곧 주옥같았고 현재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1990년대 무렵 내놓은 작품은 여러모로 완벽하다. 유니크하면서도 깊다. 무심하지만 간절하다.

왕페이의 쇼트커트가 인상적인 <중경삼림>(1994)도 그러했고, 왕가위 감독의 뮤즈 장만옥과 양조위의 치명적인 무드의 <화양연화>(2000)는 “그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거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명대사를 남겼다. 걸작으로 꼽히는 <아비정전>(1990)은 개봉 당시는 오해를 받았지만 얼마 후 성지가 되고, 전설이 된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를 ‘미완’으로 끝내버렸다. 속편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 그의 세계관은 쭉 이어진다. 이 영화엔 길이길이 기억될 명대사가 남았다. “발 없는 새가 있지. 날아가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평생 딱 한 번 땅에 내려앉을 때가 있는데 그건 죽을 때지.” 이 말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듯 살아갈 수밖에 없는 ‘아비’(장국영 분)의 자신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 결국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결핍과 허망함이야말로 <아비정전>의 정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단연 <해피 투게더>(1997)다. 홍콩을 떠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온 두 남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의 내레이션은 아름답다 못해 눈부시다. 시네 아티스트 왕가위의 범접할 수 없는 세계관을 단번에 영접할 수 있다. ‘아휘’(양조위 분)와 ‘보영’(장국영 분)은 왜 아르헨티나에서 사랑해야 했을까? 감독은 그렇게 읽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어쩔 수 없이 1997년 홍콩 반환이 배경이 됐다. 홍콩에서 못 이룰 사랑을 이곳에서라도 이루고자 했던 가난한 청춘의 이야기다. 화면은 두 주인공의 감정에 따라 컬러와 흑백이 교차한다. 파격적이고도 아름답다. “사실 그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다.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보영을 향한 아휘의 내레이션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계속 사랑에 대하여 말해왔다. 하지만 그 사랑은 결코 완성되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게 본디 그러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욱 허무하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작품으로 1997년 제50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나는 오늘, 야근을 끝낸 뒤 퇴근했다. 영화 한 편쯤은 보고 자야 억울하지 않은 그런 날이다. 오늘의 기분은 ‘우디 앨런’이다. 넷플릭스를 클릭하고, ‘우디 앨런’을 검색한다. 위트와 낭만으로 가득 찬 이 천재 할아버지가 만수무강하길 간절히 바란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3년 04월호

2023년 04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