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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이 남긴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

On July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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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추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함께 했던 사람이다. 옆에 있는 사람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감정을 교류했는지에 따라 좋은 여행지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여행지가 되기도 한다.

22살 여름, 몸 크기에 버금가는 배낭을 둘러메고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다. 나 홀로 백패커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안고 떠났으나 생전 처음 만난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에서 느낀 외로움은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도 구미가 당기지 않았고, 유명 관광지에서도 그렇다 할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 페루까지 꾸역꾸역 국경을 넘어갔다.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을 마주하기도 힘들었던 약 2개월의 시간. 마추픽추가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덕분인지 페루에 닿자마자 곳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왔다. 엄청난 위안이 됐다. 고향에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페루 쿠스코의 한 민박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10명 남짓의 한국인 여행자들과 말문을 텄다. 어린 나이에 겁도 없이 먼 곳으로 여행을 온 거냐는 숱한 질문 속에서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그들의 나이는 20대 중반이었다. 지금이야 22살이든 25살이든 다 똑같이 어리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엔 그들이 어른처럼 느껴졌다.

그들을 만나면서 진짜 여행이 시작됐다. 남미 여행은 보통 페루 이후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순으로 국경을 넘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마지막인 것처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뒤에도 종종 다른 국가, 다른 지역에서 다시 만났다. 각자의 루트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여행을 즐겼고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최선을 다해 같이 있으려고 했다.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 등 여행지 버킷 리스트에 꼽히는 곳도 이들과 함께 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관광지의 절경보다 숙소에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지어 먹었던 그 시간이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축구와 군대 이야기만큼 듣기 싫은 게 여행담이다. 그래서 어떤 자리에서든 여행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 하지만 우리끼리 만났을 땐 예외다. 언제든 묶어뒀던 보따리를 풀어내 그땐 그랬고, 저땐 저랬다는 말을 이어간다. 같은 이야기를 2만 4,621번 정도 나눈 거 같은데 항상 같은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진다. 22살이었던 나는 어느덧 당시 나이 서열 2위였던 칠레 메이트 오빠의 나이가 됐다. 그동안 몇몇은 결혼했고, 몇몇은 지방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약 100일간의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을 묻는다면 그때 그 사람들이다. 아무런 이해를 따지지 않고 맺을 수 있었던 귀한 관계다. 그들은 알까? 나는 아직도 그때 먹었던 냄비밥을 떠올리며 간간이 미소 짓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추억을 선물해준 당신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7월호

2022년 07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