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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짝퉁을 살까?

‘그냥 예뻐서’ 가품을 샀다는 것은 거짓이다. 아무 생각 없이 가품을 소비하는 이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On March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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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말, 명품 브랜드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일부 부유층이 애용하던 명품 브랜드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마케팅을 펼쳤고, 그만큼 명품을 욕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특히 프라다는 정말 인기가 많았다. 커리어우먼의 가방이라면 가죽으로 만든 숄더백이 정석이었던 시절, 낙하산 소재로 쓰이는 나일론으로 만든 검은색의 스포티한 백팩은 20세기 패션사에 기록될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가방이 아니라 패션 디자이너이면서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미우치아 프라다의 진보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은 산물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필자는 교내에 검정 나일론 백팩을 멘 여성들이 활보하던 ‘순간’을 하나의 이미지로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은 상당 부분 가품으로 소비됐다. 당시 20~30대를 보낸 이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밝은 곳에서 검정 배낭을 하나 사면 어두운 구석으로 이동해 프라다 삼각 로고로 교체해주던 은밀하고도 신속한 손을 말이다. 사실 너무 시대적 유행처럼 번져 불법인 줄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필자 주변 지인들의 관심은 에르메스로 옮겨갔다. 한번은 꽤 부유한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현관에는 에르메스 신발이 가득하고 흔쾌히 공개한 드레스 룸에도 에르메스 가방이 족히 10개는 넘게 있었다. 에르메스 버킨백은 1,000만원이 훌쩍 넘는데 이를 현금 가치로 환산하면 다 얼마란 말인가! 놀랍게도 그는 이 중 일부는 소위 말하는 A급 가품임을 털어놓았다. 명품 브랜드의 진품과 가품을 섞어 착용하면 전부 진품처럼 보인다는 ‘꿀팁’까지 공개하며, 만약 구입할 의사가 있다면 A급을 판매하는 업자와 연결해주겠다는 호의(?)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넷플릭스 예능 <솔로지옥>에 출연하며 단숨에 핫 걸이 된 유튜버 프리지아가 추락해 활동 중단까지 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가짜 명품 때문이었다. 이를 지켜보며 필자는 에르메스가 가득한 집에 방문했을 때를 떠올렸다. 가품을 진품처럼 위장하는 방법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프리지아는 성수동의 고급 아파트에 거주하며 금수저 이미지를 획득했다. 그만큼 프리지아의 명품 하울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냈고,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가품이 섞여 있을 거라고 의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요즘 MZ세대는 소유하기엔 너무 높은 벽이 된 아파트를 포기하는 대신 즉각적 만족감을 주는 명품 구매에 열을 올린다. 명품 브랜드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가격을 올려 재테크 효과가 있고, 누구나 손쉽게 명품을 재판매할 수 있는 중고 거래 플랫폼도 속속 생기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프리지아는 금수저 이미지를 어필하고 소수의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연기하며 MZ세대의 워너비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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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 유행할수록 가품도 더욱 활개를 친다. 특허청에 접수된 위조 상품 신고 건수는 2017년 4,133건, 2018년 5,557건, 2019년 6,864건, 2020년 1만 6,935건을 기록하며 점점 더 상승 곡선을 기록하고 있다. 가품 중에서도 최고급 레벨인 ‘슈퍼 페이크(Super Fake)’까지 등장했다. 슈퍼 페이크는 겉모습이 진품과 거의 유사할 뿐만 아니라 품질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서 브랜드에서도 감별에 애를 먹는다. 슈퍼 페이크가 많아지고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을 포함한 다양한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될수록 진품 인증은 더욱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점점 더 정교해지는 가품에 대응해 명품 브랜드의 인증 시스템도 발 빠르게 생기고 있다. 브랜드에서 자체 중고 거래 플랫폼을 만들어 중고도 인증된 정품만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하고, 솔루션 회사와 협업해 제품에 정품 인증 칩을 심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머신러닝을 통해 진품과 가품을 손쉽게 구분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이처럼 가품에 대비하는 브랜드의 행보는 ‘범죄와의 전쟁’ 수준이다. 프리지아의 가품 논란은 일개 유튜버를 깎아내리기 위한 해프닝이 아니라 일상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임을 더 많은 사람이 인지해야 한다.

품질까지 유사한 수준이라면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진품을 사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패션 매거진의 에디터로서 명품 브랜드를 취재하며 높은 예술적 성취를 위한 그들의 열정을 종종 마주했다. 프라다를 비롯해 까르띠에, 구찌, 프라다, 루이 비통 등이 패션의 범주를 한 단계 뛰어넘어 한 시대의 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벌이는 일들은 생각보다 더 많다. 이를테면 이 시대의 속도에는 더 이상 맞지 않아 곧 사라질 수공예 공방들을 찾아내어 보존하는 일, 전 세계 곳곳의 재능 있는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고 후원하며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세계 곳곳에 박물관을 짓는 일 등은 분명 인정받아야 한다. 절대적 아름다움을 향한 명품 브랜드의 집념은 동시대 문화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원동력이며, 이런 활동을 통해 명품 브랜드가 뾰족하고 날 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품을 소비하는 것은 이런 과정을 무시한 채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결과만을 부당하게 취하는 도둑질에 다름 아니다.

현행법상 가품을 판매하는 이들만 처벌받게 돼 있지만, 가품을 사용하는 것 또한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가품과 진품을 섞어 모두가 진품처럼 보이도록 소비하는 것을 슬기로운 소비 생활처럼 느낀다면, 피아제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따르면 고작 만 9세 이전 수준의 도덕성을 가진 것이다.

CREDIT INFO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3월호

2022년 03월호

에디터
문하경
명수진(패션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