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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게임

이정재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시리즈물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에 등극했다.

On November 03, 2021


멋짐의 대명사였던 배우 이정재가 찌질한 모습으로 초대박을 쳤다. 이정재가 출연한 넷플리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톱 10’ 1위에 등극한 것. 전 세계 83개국 중 76개국 ‘TV 쇼 부문’ 1위로 올라서면서 세계적 신드롬을 이어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다. 극 중 이정재는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후 사채를 쓰고 도박을 전전하다 이혼하고 한심하게 사는 40대 ‘기훈’ 역할을 맡았다. 어머니의 병원비를 구하던 중 의문의 남자의 제안을 받고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한다.

<오징어 게임>은 영화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 등 장르의 한계 없이 새로운 이야기와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선보여온 황동혁 감독이 2008년부터 구상해온 작품이다. 추억의 게임이 극한의 서바이벌로 변모하는 아이러니를 담아내며 경쟁에 내몰린 현대사회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와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이정재 외에도 배우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아누팜 트리파티, 김주령 등이 벼랑 끝에 몰려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이들로 분해 각기 다른 선택과 이야기를 선보인다.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이래 어엿한 톱스타로 10여 년이 넘게 자리를 지켜온 배우이자 영화 연출자(액션영화 <헌트>로 감독 데뷔를 앞두고 있다), 매니지먼트사 대표이기도 한 이정재를 만났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헤어스타일과 의상, 표현일 뿐이다.
물론 비주얼은 확실히 오징어가 됐지만 의도된 바다.

<오징어게임>에서 오징어 됐죠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친구들이 연락을 많이 해온다. 감사하다. 극의 콘셉트가 좋았다. 성인들이 하는 서바이벌 게임인데 어렸을 때 했던 게임으로 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감이 더 느껴지지 않나. 게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의 애환과 고충을 과장되지 않게 하나씩 쌓아나가는 과정이 다른 작품과 다르게 느껴졌다. 또 서바이벌 게임 관련 콘텐츠가 이전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봐주신 것 같다. 막상 보다 보니 참신했던 게임들도 있고, 실제로 예전에 한국에서 많이 했던 게임이었다는 것도 신선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다.

‘기훈’이라는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처음엔 감독님이 주신 시나리오라고 소속사를 통해 대본을 받았다. 평소 같이 작품을 해보고 싶은 감독님이었다. 막상 읽어보니 시나리오가 흥미진진하고 인물들을 세밀하게 만들어놓아 좋았다. 내가 맡은 역할 역시 상황과 심리묘사가 잘돼 있었다. 사실 나이가 먹다 보니 악역이나 센 역할밖에 안 들어온다. 늘 새로운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기훈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자 캐릭터라 해보고 싶었다. 강한 캐릭터는 초반에 설정을 잡아서 밀고 가면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는데, 생활 연기라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해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일상과 극한을 섞어가며 연기했던 것 같다.

대본을 읽고 난 뒤 첫인상과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뒤 소감이 어땠는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인물과 인물 간 케미가 촘촘히 짜여 있어서 감탄했다. 시나리오가 아주 간단명료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감독님이 정말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을 했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난 뒤에는 시나리오에 담지 못했던 메시지, 언어, 표현, 감정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져 감독님께 다시 감탄했다.

잘생김을 내려놓은 캐릭터다. 그러다 보니 평상시 잘 쓰지 않는 표정과 하지 않는 동작들도 나오더라. 근래에 내게 없던 표현들이라 보면서 많이 웃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를 위해 밤에 길거리를 걸으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캐릭터를 표현하는 헤어스타일과 의상, 표현일 뿐이다. 물론 비주얼은 확실히 오징어가 됐다. 보신 분들이 진짜 모자가 안 어울린다고 왜 하필 저런 모자를 썼냐고 하더라. 사실 기훈의 의상은 신경을 많이 썼다. 사이즈도 안 맞고 ‘왜 저렇게 매치했지?’ 싶은 느낌이 들게끔 입었다. 의도된 바다.

비주얼을 만들 때 어느 정도 관여했나? 사실 언젠가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참여할 때 스타일에 대한 의견을 내는 일을 자제한다. 내 머리에서 나오면 비슷한 캐릭터에서 못 벗어날 것 같아서다. 스태프가 작품마다 바뀐다. 그래서 스태프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가 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오징어 게임>에서는 내 아이디어보다는 스태프의 의견을 따르는 게 효과적일 거 같아서 전적으로 따랐다. 그냥 주는 대로 입었다. 애초엔 빨간 머리도 꼭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극한 상황을 빠져나온 기훈의 입장에선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의 의도, 기훈의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덧붙이지만 촬영을 드라마 순서대로 하지는 않아서 염색하지 않고 가발을 사용했다.

사실 ‘이정재’ 하면 국내에서는 멋짐의 대명사이지 않나? 그런데 전 세계에 ‘찌질한 모습’을 선보이게 됐는데 어떤가? 찌질한 역할이든 근사한 역할이든 내 연기를 봐 주신다면 그저 감사하다. 재미있었던 건, 많은 분이 SNS에 ‘사실 이정재라는 배우가 찌질한 역할만 하는 배우가 아니다’라는 걸 해명해주려고 멋지게 나온 내 사진을 많이 올려주시더라. 인상이 깊었다.(웃음)
 

매 작품 다 소중하고, 성공보다는 작품을 만든 의미와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한다. <오징어 게임>이 크게 흥행했고, 그 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나 재미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관객이 잘 이해하고 즐거워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거 같다.

기훈은 무기력한 삶을 살아오다 궁지에 내몰리자 절박한 심정으로 게임에 참가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게임장 안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음이 인상적이었다. 연기하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기훈은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이후 이혼하고 아이를 자신이 키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아플 때 치료비가 없어서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을 청할 수도, 받을 수도 있다. 주고받는 게 인생사다. 개인적으로 기훈은 도움이 필요할 때 받지 못했던 기억이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훈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게 기훈의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오징어 게임>에서 기훈이란 인물은 다층적이다. 어머니의 돈으로 경마장에 가는 인물이면서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인물이기도 하다. 파업하다가 동료를 잃기도 했다. 인물을 표현할 때 일관성 있게 톤을 잡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인간은 굉장히 복잡하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대상을 압축시키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연기자들은 캐릭터를 분석하고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갈 때 캐릭터를 압축하고 단순하게 계획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이다. 기훈은 인간적인 면도 있지만 철이 없기도 하다. 상대를 속이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렇듯 복합적으로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야 그게 진짜 캐릭터고 사람이다. 결국 여러 상황이 펼쳐지면서 여러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엔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즐겼던 게임들이 등장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과 구슬치기, 줄다리기, 오징어 게임 등등이다. 비하인드도 궁금하다. 디테일이 섬세한 세트장 때문에 매번 촬영 전에 사진 찍기 바빴다. 특히 징검다리 게임은 실제로도 어려웠다. 1.5m~2m 정도 공간을 띄우고 ‘안전하니까 걱정 말고 뛰세요!’ 하시는데 쉽게 못 뛰겠더라. 발에 땀이 나서 미끄럽기도 했다.

‘달고나 게임’도 인상적이었다. 뭔가를 핥는 행위가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지 않나.(웃음) 그걸 정말 열심히 핥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잠깐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을 건 기훈의 절박함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장면이었다. 촬영할 때도 재미있게 찍었다. 작은 동작으로 긴장감을 최고치로 끌어올려야 해서 결코 쉽지 않은 장면이었다.

결국 타인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죽음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이 매번 연출됐다. 실제라면 어떻게 했겠나? 글쎄, 나라면 목숨을 건 게임은 좀….(웃음) 하지만 연기하는 동안 그 수많은 짠한 캐릭터를 떠올리며 진짜 나라면 상금을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더욱 처절해 보이길 바랐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촬영 당시 어깨 부상을 당했던 걸로 아는데 현재 상태는 어떤가? 오른쪽 어깨는 이미 수술한 상태다. 왼쪽 어깨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촬영하면서 파열됐는데 다음 작품에 곧바로 들어가게 돼서 아직 수술을 못 하고 있다. 예전에 오른쪽 어깨가 파열됐을 때 수술 일정으로 인해 약속된 작품을 못 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후회가 많이 됐었다. 그래서 이번엔 수술보다도 작품을 선택했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징어 게임> 이후 곧바로 영화 <헌트>를 촬영하게 돼 수술은 또 미뤄둔 상황이다.

극 중 공유와 잠깐 호흡을 맞췄고, 이병헌도 출연했다. 공유 씨는 작품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다. 언젠가는 작품을 함께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징어 게임>에서 만나게 됐다. 극 중에서 제 뺨을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친분도 있고 내가 선배이다 보니 어려워하더라. 당시 지하철에서 촬영했는데 사람이 없는 이른 시간에 진행됐다. 공유 씨가 새벽에 와서 내 뺨을 열심히 때리고 갔다.(웃음) 병헌이 형도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다. 한때 같은 소속사에 몸담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병헌이 형에게도 감사하다.

데뷔 30년이 코앞이다. <오징어 게임>은 이정재라는 배우에게 어떤 의미인가? 매 작품이 다 소중하고, 성공보다는 작품을 만든 의미와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오징어 게임>이 크게 흥행했고, 그 안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메시지나 재미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관객이 잘 이해하고 즐거워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거 같다. 좋은 감독과 스태프 덕분에 호흡이 잘 맞는 작품이었다. 앞으로도 K콘텐츠가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넷플릭스 콘텐츠에서 추천 프로그램으로 ‘블랙핑크’의 다큐를 꼽았다. <오징어게임>에 출연한 (정)호연 씨와 제니 씨가 친한 언니 동생 사이다. 제니 씨가 응원차 호연 씨에게 커피 차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인사를 나눴다. 넷플릭스에서 ‘블랙핑크’ 다큐 프로그램을 봤는데, 놀라울 정도로 ‘블랙핑크’의 서사가 잘 담겨 있더라. 끊임없이 연습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탄생한 그룹이었다. 그 열정을 전 세계인이 알아준다는 게 놀랍고 감탄스러웠다. 다큐를 보면서 박수를 크게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영화 연출자로 데뷔한다. 다방면의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나오나? 살다 보면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지더라라. 영화 연출이나 제작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해본다면 효율성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영화 제작과 연출도 하고 시나리오도 쓰게 됐다. 곧 영화 <헌트>를 통해 인사드리겠다.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
2021년 11월호

2021년 11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