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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에 대하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가수 양준일을 만났다. 입구에서 걸어오는 그에게선 단번에 ‘남다름’이 느껴졌다.

On April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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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싱글 앨범 <리베카>로 데뷔한 가수 양준일은 당시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외면당했다. 2집 활동 후 미국으로 떠난 그는 2019년 유튜브에 불어온 레트로 열풍 때문에 재조명됐고 '탑골 GD'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입소문을 탔다. 양준일은 2019년 말 JTBC 예능 <슈가맨 3>에 출연해 변치 않은 춤선과 패션 감각, 남다른 콘텐츠로 한순간에 대중을 사로잡았다. 역대급 신드롬이었다.

그는 최근 미니 앨범 <데이 바이 데이(Day By Day)>를 발매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데이 바이 데이>는 펑키한 멜로디의 타이틀곡 '렛츠 댄스(Let's Dance)'를 포함해 총 6곡(영어 버전 포함 8곡)이 수록됐다. 양준일이 모든 곡의 작사를 직접 맡았으며, 미국 작곡가 발 가이나가 전곡을 작곡했다. 타이틀곡 '렛츠 댄스'는 그동안 보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팬들을 향한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양준일은 인터뷰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슈가맨 3>로 컴백한 뒤 초기에 몇 차례 인터뷰에 응했는데 그때마다 상처받는 일이 잦았다는 것. 자신의 이야기보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기사의 중심이 되고, 사지로 몰고 가는 몇몇 매체의 질문 리스트를 받아본 뒤로는 인터뷰를 꺼리게 됐다.

"물론 오늘처럼 내 이야기를, 나를 깊게 파고드는 인터뷰라면 언제나 환영이에요."

그는 말투, 눈빛, 미소 하나하나가 특별했다. 문화의 차이라기보다 사람의 특별함이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영화나 책을 인용하며 자신의 감정을 전달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하듯 리드미컬하게 들려줬다. 특유의 제스처는 마치 무대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최근에 새로운 소속사를 만나 안정을 찾은 그는 현재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더없이 행복한 나날이다. "오늘 무척 덥죠?"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진중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네 바보 형' 같은 사람입니다

쉬면서 어떻게 보냈나요? 녹음하고 곡을 쓰고 팬들과 소통하며 지냈어요. 무엇보다 아이(7세)와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앨범이 나왔어요. 기다리는 팬이 많았는데 부담은 없었나요? 감사함과 함께 즐기는 걸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사람들의 관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이 순간을 깊이 느끼고 싶었어요. 마인드 컨트롤은 경험에서 오는 것 같아요. 제가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경험했으니까요. 50대인 저에겐 인기가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어렵지 않아요. 그래서 표현할 수 있을 때 마음껏 표현해요. 팬들에게도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해요.

과거보다 지금은 활동하기에 심적으로 안정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어요. 당시엔 음반을 내려면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거든요. 그때의 저는 인기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또 그 열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그런 과정을 겪었기에 지금은 어떠한 상황이 와도 불안하기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

SNS를 보면 마니아층이 아이돌 못지않아요. 저는 팬들을 'My Queens and Kings'라고 불러요. 힘 있는 자 또는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자라는 의미예요. 저를 구한 사람들이니까요.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제가 주인공 '검프'처럼 느껴져요. 검프처럼 평생 설 자리를 찾는 게 힘든 인생이었으니까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발바닥이 땅에 안 닿는 사람 같았죠. 영화 속에서 검프가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는데 다들 검프를 옆자리에 앉지 못하게 해요. 그때 '제니'가 앉으라고 하죠.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됩니다. 제니와 검프는 서로에게 자신의 속내를 밑바닥까지 보일 수 있는 관계가 돼요. 그래서 저희 팬들에게 '제니'라는 애칭을 붙여줬어요. 그래서인지 팬들은 제 노래를 듣고 많이 울어요. 제가 느꼈던 아픔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죠. 우리는 단순히 팬과 스타의 관계가 아닌 아픔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돈독한 관계예요.

이번에 발표한 미니 앨범 <데이 바이 데이>를 소개해주세요. 바쁠 때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가 지나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하루하루가 고민이죠. 오늘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잘 버틸 수 있을까? 그걸 주제로 곡을 썼어요. 저는 미국에서 서빙 일을 하며 받은 일당으로 가족을 부양했어요. 손님에게 팁을 받는 날은 아이와 월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는 날이죠. 그 이전엔 창고에서 일했는데 정해진 월급이 나왔지만 액수가 적어서 서빙으로 일자리를 옮긴 거예요. 서빙은 일한 만큼 돈을 받고 팁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팁으로 받은 동전을 모아 아이 우유를 사야 했지만 힘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오해가 생겨 억울하게 일자리를 잃었을 때는 무척 힘들었죠. 그 뒤엔 빌딩 청소를 했는데 길을 걸으면 빌딩만 보이는 거예요. 저 빌딩을 청소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텐데…. 저는 일이 힘들거나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어요.

'7시에 눈을 뜨고 / 생각 없이 샤워하며 / 향기 없는 커피를 몇 모금을 마시며 / 힘이 없는 몸을 끌고 시작하려 했지만 / 의미 없는 하루하루 / 끝을 보고 싶을 뿐이야/ 내 인생을 돌이켜서 영화처럼 다시 보면 / 후회하는 장면들이 너무나도 많았었어/ 흔들리는 나의 인생 / 자신 없는 나의 손목 / 부드럽게 다가와서 잡아준 건 너뿐인 거야(중략)' -<데이 바이 데이 '하루하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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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관심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제가 영원하리라고 믿었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경험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순간을 깊이 느끼고 싶었어요.

이번 앨범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왔을 때 제가 가족에게 느꼈던 행복과 충만함…. 결국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돈, 희망, 미래가 없던 우리 가족이지만 우리 관계는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거든요. 아픔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죠.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진짜 나에게 남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 같아요. 그 메시지가 이번 앨범을 관통해요.

인터뷰하다 보니 손짓, 말투, 제스처가 아티스틱해요. 그동안 이 충만한 소울을 어떻게 묻어두고 지냈나요? 묻어두었다기보다 무대와 음악을 떠난 저는 스스로 '동네 바보 형'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정말 평범하거든요. 제가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들이 화장실에서 큰일을 본 뒤 제게 닦아달라고 할 때예요. 제가 필요한 존재인 거잖아요.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할 때 존재감과 행복을 느껴요.

인생에서 가족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선택지가 없을 때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느끼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을 때도 과연 그럴까요? 그런 순간에도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 인기와 돈이 많다면 그 어떤 일보다 내 아이를 안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낄까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에요. '그 상황에서 다른 걸 잡고 싶어 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을 늘 합니다.

나에게 가족이란? 잠수함. 잠수함은 조금만 금이 가도 가라앉잖아요. 제가 그 잠수함의 캡틴입니다(웃음).

육아에 어느 정도 시간을 쓰나요? 그동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적이 없었어요. 미국은 어린이집 비용이 비싸서 엄두를 못 냈죠. 그래서 늘 아이와 함께 있었고, 쉬는 날에는 쇼핑하고 놀이공원에 데리고 갔어요. 한국에 온 뒤로 최근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첫날 데려다주고 오는 차 안에서 제가 자꾸 백미러를 보는 거예요. 뒷자리에 아이가 없으니 낯설고 허전하더라고요.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는 게 아니라 제가 이 상황에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서로 손 하트를 보내는데 지금도 헤어지는 게 힘들어요. 버스가 바로 떠나지 않고 좀 머무를 때면 아련한 눈빛으로 서로 아이 콘택트를 하죠. 그래서 다시 데리고 올까 싶기도 한데, 막상 유치원에 가면 잘 논다고 해요.(웃음)

미국 생활을 접고 가족과 한국에서 지내는 일상은 어때요? 일주일 전에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어요. 시간도 경제적인 여유도 초대할 사람도 없어서 결혼식을 못 했고 신혼여행도 못 갔거든요. 그래서인지 워터파크에서 아이보다 저희 부부가 더 신나게 놀다 왔어요.(웃음) 무엇보다도 돈 걱정하지 않고 즐겼던 여행이라 의미가 있었어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기분에 따라 하루 더 묵어도 되는 여유 있는 여행이오. 밥을 먹을 때도 커피를 살 때도 행복했어요. 집에 가는 길에 아내한테 평생 기억에 남을 첫 여행이라고 말했더니 아내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의미 있는 우리의 첫 여행이었어요.

간혹 미국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한국 피자가 더 맛있고, 한국 햄버거가 더 제 입맛에 맞아요.(웃음) 덧붙이자면 저는 오래전 한국을 떠날 때도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돌아갈 수 없는데 그리워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단지 팬들이 다시 제게 무대에 서달라고 했을 때 이걸 잡아도 되나 싶은 고민은 있었어요. 어렸을 때 미국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그 길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깊숙이 버려두려고 노력했거든요. 그럼에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잡기도 힘들었어요.

'나에게 미국이란' 어떤 곳일까요? 자유로움을 준 땅. 미국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온 동네를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있었어요. 한국은 차가 많아서 조금 위험하잖아요. 아, 미세먼지가 심할 때는 간혹 미국이 그립긴 해요.

활동하면서 구설수가 꽤 있었어요.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나요? 이해하려고 노력하거나 혹은 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과 나눌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죠.

구설수에 말을 아끼는 방식을 택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아요. 말을 아끼는 건, 상황을 파악하는 중이라는 의미예요. 문제가 뭔지, 본질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느끼는 게 뭔지를 파악해야 그에 맞는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 제가 선택하는 방법은 상대방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거죠. 이후에 제 이야기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아이와 교감해요. 그리고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죠. 사실 저는 과거에도 대중에게 노출되는 삶을 살아서 저에 대한 악플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데, 아내는 여전히 힘들어해요. 그럼 제가 아내에게 말해요. "일주일 전과 오늘이 달라졌어?" 그렇지 않거든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저를 싫어하고, 과거에도 저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어왔어요. 변하지 않는 것 때문에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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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평생 행복을 찾아 헤맸다면 이젠 그 행복을 잡아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지금은 옷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지난 2019년 대한민국에 '양준일 신드롬'을 일으켰어요.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기적'이죠. 드라마틱했어요. 저의 아픔에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어요. 저는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하니까요. 할 수 있을 때 맘껏 표현하고 싶어요. 다 끝난 다음에 "사랑했었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패션도 화제였어요. 양준일에게 패션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는 패션이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지금은 옷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쇼핑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요즘은 주로 올블랙 룩을 입는데, 심플하고 세련됐잖아요. 이번 앨범이 드라큘라 콘셉트라 더욱 블랙에 집착하는 중이에요.(웃음)

50대이지만 여전히 슬림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요. 소식하는 편이에요. 선택적으로 식단 관리를 했다기보다 서빙을 하면서 중간에 밥을 먹으면 졸리고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먹지 않고 마감 시간까지 버티는 게 습관이 됐어요. 덕분에 지금도 소식하고 있고, 밖에서 먹기보다는 집에서 간단히 먹는 걸 선호해요.

'아티스트'라는 수식어와 어울려요. 그런가요?(웃음) 저는 저 자신을 소개할 때 이름 앞에 아무것도 붙이지 않아요. 유명한 TV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보면 '나이트 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칼을 휘두르지 않아요. 이 세상에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의미죠. 왕을 위해, 종교를 위해 혹은 돈을 위해 칼을 들죠. 저도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거예요. 제가 나눌 게 있다는 게 의미가 크죠. 그래서 저는 제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요.

언론이나 대중이 붙여준 수식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뭔가요? 우리에게 릴랙스를 제공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문화예술이에요. 영화든 패션이든 스타일이든 사람들이 문화를 즐기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제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에요. 그래서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도 제가 문화예술로 대중과 소통하고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 중요해요.

'탑골 GD'라는 수식어는 어때요? 사실 지드래곤을 잘 몰랐어요. 단지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알았고, 나를 그에게 빗대어 말하는 게 큰 칭찬이라고 생각했어요.

음악 외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음악'은 모든 예술 분야의 집약이라고 생각해요. 곡을 쓰고, 패션을 리드하고,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에 그야말로 예술적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죠. 아, 책을 쓰고 있긴 해요. 마무리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아요. 꾸준히 계속 쓰기보다는 문득 느낌이 올 때만 쓰는 식이거든요.

함께 무언가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음악이든 어떤 프로젝트든. 아직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누군가와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느끼려면 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아요.

'나의 50대'는 어떻게 그려질까요? 제 인생의 큰 목적은 이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과 소중한 것 그리고 영원한 것을 찾고, 그걸 제 아이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저는 아이가 편의점에서 일하든 아티스트가 되든 중요하지 않아요.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아름다운 걸 느낄 수 있고, 소중한 걸 잡을 수 있으면 그 어떤 바람에도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50대가 그랬으면 좋겠고, 아이도 그렇게 성장해주길 바라죠.

따뜻한 봄이 왔어요. 설레지 않나요?(웃음) 저는 문득 '지금이 몇 년도지, 언제지'라는 생각을 해요. 따뜻한 봄이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이 빨리 가고 있어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내년이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안고 다니기도 힘들 만큼 자랐어요. 그래도 저는 아이를 종종 안고 다녀요. 조금만 지나면 정말 못 안을 만큼 자랄 테니까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요.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걸 아이가 성장하는 걸 보며 느낀다니까요. 나이를 잊고 살고 계절에도 무딘 편이에요. 그렇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한가요? 너무너무. 평생 행복을 찾아 헤맸다면 이젠 그 행복을 잡아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느낌이에요.

CREDIT INFO

에디터
하은정
사진
지다영
장소
카페 빈플루
2021년 05월호

2021년 05월호

에디터
하은정
사진
지다영
장소
카페 빈플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