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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오빠, 나훈아

74세 ‘가황’은 건재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화끈했다.

On November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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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오빠, 나훈아!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겁니다.” 나훈아는 역시 나훈아였다. 74세 나이가 믿기지 않는 호방함이 TV 밖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나훈아는 지난 9월 30일 방송된 KBS2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통해 비대면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무려 15년 만의 안방극장 나들이였다.

나훈아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자 무보수로 공연에 출연했다. “가자!”라고 포효한 그는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거침없이 곡조를 뽑아냈다. 2시간 반 동안 무려 29곡을 소화하면서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소리꾼’이라는 수식어답게 애절하게, 때로는 파워풀하게 열창했다.

공연은 ‘고향’ ‘사랑’ ‘인생’을 주제로 구성됐다. 나훈아는 트로트에 클래식, 포크, 헤비메탈, 국악, 사물놀이 등을 결합하면서 장르의 경계를 지웠다. 공연 매너와 쇼맨십도 한층 무르익었다.

첫 곡 ‘고향으로 가는 배’에서는 풍랑에 휩싸인 바다 위 거대한 배가 등장했고 ‘아담과 이브에서처럼’에서는 나훈아가 직접 와이어 액션을 선보였다. 피날레를 장식한 ‘사내’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형상화한 그래픽이 불길에 활활 타오르는 장관을 연출했다. 하모니카를 연주한 가수 하림, 피아니스트 진보라, 래퍼 군조 등 후배 뮤지션과도 다채롭게 협업을 이뤘다.

지난 8월 20일 발표한 신보 <2020 나훈아의 아홉 이야기>에 수록된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명자!’ ‘테스형!’ 등 신곡 무대도 최초로 공개했다. 신곡 중 단연 화제를 모은 건 ‘테스형!’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을 남긴 유명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한바탕 속풀이를 하는 노래로, 나훈아가 직접 작사·작곡에 나섰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왜 이렇게 힘드냐며,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테스 형을 붙잡고 툴툴 내뱉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나훈아는 이날 무대에서 “내가 테스 형한테 물어봤다. 근데 테스 형도 모른다고 한다. 테스 형은 아무 말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세월은 너나 나나 할 거 없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냥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세월은 가게 돼 있다. 이왕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된다”고 관객들을 격려했다. 가수로서는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고 어른으로서는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위로를 선사했다. 콘서트는 끝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나훈아를 쉬이 잊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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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KBS홀에 LED 타일 6,000개를 깔았다. 1,000명의 비대면 관객들과 생생한 호흡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나훈아가 남기고 간 것

나훈아 콘서트의 여파는 상상 이상으로 거셌다. 파급력은 수치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9월 30일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29%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KBS2 주말드라마 정도를 제외하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치다. 지역별로는 부산에서 38%로 가장 높았고 대구·구미에서 36.9%로 뒤를 이었다. 서울에서도 30.03%를 기록했다. 총 3개 지역에서 30%대를 돌파했으며 그 외 수도권에서는 7.2%, 광주에서는 22.4%, 대전에서는 27.2%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집계, 10월 1일 기준). TNMS 조사 결과, 순간 시청률은 50%를 상회하기도 했다.

‘테스형!’ 음원에 대한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음원 사이트 ‘지니뮤직’ 집계에 따르면 추석 연휴(9월 28일~10월 4일) 동안 ‘테스형!’ 스트리밍이 직전 주에 비해 무려 3,733%나 증가했다. 나훈아의 전곡 스트리밍도 직전 주 대비 264.9% 증가했지만 ‘테스형!’에 대한 주목도가 독보적이었다. 음원 순위도 급등했다. ‘테스형!’은 지난 10월 1일 ‘멜론’ 일간 차트에서 95위를 기록해 순위권에 진입했다. 현역 가수들도 ‘멜론 톱100’을 목표로 할 만큼 진입이 쉽지 않은 차트라 더욱 놀랍다. 이 밖에도 ‘지니뮤직’ 일간 차트에서는 49위까지 오른 뒤 80~90위권대를 유지하고 있다.

젊은 층에서는 새로운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으로 유행하고 있다. ‘테스형!’을 모방한 ‘맑스(마르크스)형’ ‘라톤(플라톤)형’ 등 패러디도 등장했다. 커버송 콘텐츠를 제작하는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요즘 가장 핫하다. 김연숙, 미기, 요요미, 유민지, 박성현 등 유튜브 스타들이 경쟁적으로 ‘테스형!’ 커버 릴레이에 나서고 있다. 지난 10월 5일에는 EBS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가 ‘펭훈아’로 변신해 ‘테스형!’을 부르는 패러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전 세대의 마음을 울렸던 나훈아의 사이다 발언도 계속 회자되고 있다. 나훈아는 “우리는 지금 많이 힘들고 지쳐 있다. 옛날 역사책에도, 제가 살아오는 동안에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한 사람도 본 적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고 하면 바로 여러분이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이다”라고 말했다.

KBS를 향해서는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길 바란다”는 쓴소리까지 냈다. 나훈아는 한가위를 맞아 마냥 즐거운 이야기를 늘어놓는 대신, 준비된 멘트로 묵직한 울림을 줬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꼰대의 충고’보다는 ‘어른의 위로’ 같은 느낌마저 선사했다. 우리 시대의 진짜 어른에 대해 각자의 위치에서 반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반면에 후폭풍도 있었다. 정부와 공영방송에 대한 나훈아의 발언을 두고 여야 정치권에서 뜨겁게 반응한 것이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0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인은 여러분이라며 잊고 있었던 국민의 자존심을 일깨웠다”면서 “‘언론이나 권력자는 주인인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그가 남긴 대한민국 어게인의 키워드”라고 말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 없다. 제1야당에 부과된 숙제가 분명해졌다. 국민과 손잡고, 국민의 힘으로,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해석에 여권 인사들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라고 맞섰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리 국민들은 위대하고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는 것이 나훈아 발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방역 당국의 호소를 조롱하고 8·15 광화문 집회와 10월 3일 개천절 집회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나훈아가 말한 ‘말 잘 듣고 잘 따르는’ 국민인가”라고 일갈했다. 또 “나훈아의 발언에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고선 마치 남 얘기하는 걸 보니 이분들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라며 “나훈아의 발언을 오독하지 말고 오도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한 명의 가수가 방송을 통해 콘서트를 선보였을 뿐인데 국민은 열광했고 정치권은 저마다 의미 부여에 나섰다. 2020년 나훈아의 저력은 이렇듯 아직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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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는 트로트에 국악, 헤비메탈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했으며 와이어 액션도 마다 않는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나훈아가 걸어온 파란만장한 삶

올해로 가수 생활 54년째다.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서 친구들과 기타를 즐겼다던 나훈아는 1966년 19세 나이로 가요계에 입문했다. 그의 데뷔곡은 ‘천리길’이었다. 간드러지는 꺾기 창법으로 주목받았던 나훈아는 1968년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 인기 가수 대열에 올랐다. 1972년에는 ‘고향역’과 ‘머나먼 고향’을 발표하면서 당대 최고의 가수였던 남진과 라이벌 구도를 이뤘다.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수왕을 차지하면서 대중가요계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대단한 인기를 방증하듯 여러 사건 사고도 뒤따랐다. 나훈아는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을 하던 도중 한 남자에게 병 파편으로 피습을 당해 몇 개월간 입원을 하기도 했다. 남진의 팬이 저지른 일이라는 악성 루머가 떠돌며 팬덤 사이에서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했다. 나훈아는 입대 직전에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 씨와 결혼했다가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에 이혼했다. 1976년 전역한 뒤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김지미와 두 번째 결혼을 진행했다. 결혼 이후 나훈아는 1981년 ‘대동강 편지’로 가요계에 복귀했고 이듬해에 ‘울긴 왜 울어’를 발표하며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가요계 복귀 이후에 김지미와 사이가 소원해지면서 나훈아는 1982년 두 번째 이혼을 맞았다.

이후에도 사생활 잡음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나훈아가 아빠가 됐다는 소식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나훈아의 아이를 낳은 이는 가수 출신의 정수경이었다. 나훈아는 1983년 정수경과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고 두 사람은 슬하에 1남 1녀를 뒀다.

나훈아는 1993년 ‘갈무리’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등 히트곡을 발매했고 꾸준한 자기 관리로 팬들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에는 간헐적으로 콘서트를 개최하며 관객을 만났다. 팬들은 좌석 전석 매진으로 보답하며 변함없이 나훈아를 지지했다. 하지만 2007년 3월 예정된 순회 콘서트를 한 달 앞두고 나훈아는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두문불출하던 나훈아는 약 1년 만인 2008년 1월 언론 앞에 나타났다. 암암리에 퍼지던 각종 루머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훈아는 ‘여배우 염문설’ ‘신체 일부 훼손설’ ‘일본 폭력 조직 관련설’ 등에 휘말렸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훈아는 단상에 올라 “5분을 보여주면 되겠냐”는 말과 함께 바지를 벗는 시늉을 했다. 극단적인 행동으로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의사였다.

퍼포먼스에 가까웠던 나훈아의 이날 회견은 나훈아의 ‘마초’ ‘상남자’ 이미지를 완성하는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나훈아는 기자회견에서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이다. 꿈을 팔려면 꿈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꿈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잠정적 은퇴를 시사한 발언이었다.

이후 불거진 각종 ‘복귀설’에 대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나훈아는 2011년 8월, 정수경과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을 진행하면서 근황을 알렸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은 약 5년간 진행됐고 재판부는 2016년 나훈아에게 위자료 12억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렇게 나훈아의 세 번째 결혼 생활이 끝났다.

하지만 나훈아는 멈추지 않았다. 2017년 신곡 ‘남자의 일생’을 발표하며 11년 만에 가요계에 복귀했다. 건재함을 증명한 나훈아는 2017년 복귀 콘서트에서 매년 공연할 것을 선언했고 올해 비대면 콘서트까지 강행하면서 팬들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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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의 콘서트 의상은 늘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무대에 걸맞은 차림이 그의 퍼포먼스를 더 돋보이게 한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레전드

나훈아가 지금까지 녹음해 발표한 곡 수는 무려 2,600곡에 달한다. 그중 작사·작곡한 노래만 800곡 이상이다. 국내 노래방 기기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기념비적인 가수기도 하다. 나훈아의 스타성과 대중성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런 나훈아의 진가는 무대 위에서 가장 빛을 발한다. 공연 때마다 레전드 무대를 선사하는 만큼 나훈아 콘서트에 대한 주목도가 높다. 철저한 자기 관리, 나이를 잊게 하는 폭발적인 무대 매너, ‘소리꾼’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절창은 트로트 레전드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점도 전 세대에게 사랑받는 비결일 것이다. 평소 공연에서 재즈, 스윙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온 나훈아는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도 헤비메탈, 어쿠스틱 팝송 등 다양한 장르를 트로트와 결합했다. 숱한 자작곡을 보유한 만큼 음악적 해석이 뛰어난 천생 음악인이다. 오늘날 나훈아가 전 세대에 걸쳐 주목받는 이유기도 하다.

나훈아의 전성기를 전혀 모르는 어린 세대도 그의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무적이고 인상적이다. 2020년 트로트가 대세 장르가 된 가운데 나훈아의 등장이 부모와 자녀 세대를 견고하게 이어주는 매개가 된 셈. 숱한 시간이 흘렀지만 ‘진정한 멋’은 결코 낡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나훈아를 보면서 깨닫게 됐다.

CREDIT INFO

에디터
박주연
사진
예아라, MBC 제공, KBS 캡처
2020년 11월호

2020년 11월호

에디터
박주연
사진
예아라, MBC 제공, KBS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