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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대한민국을 들었다 놓은 트로트 스타들

트로트 형식을 갖춘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개화한 시기는 1930년대다. 음반, 음원이 교류되는 형태의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가 올해 91년을 맞은 셈인데 그 대부분의 기간에 대중의 입에서 불린 노래 장르가 트로트이다.

On March 11, 2020

1950년대 이난영, 남인수

1934년 '타향살이'를 발매한 고복수, 1935년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1938년 '애수의 소야곡' '감격시대' 남인수, '눈물 젖은 두만강' 김정구 등 초창기 인기 가수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시장을 개척하고 성격을 규정한 주역들이다.

고복수는 1931년 콜럼비아사 주최 국내 9개 도시 콩쿠르 대회의 부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후 오케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1934년 '이원애곡'과 '타향살이' 두 곡으로 데뷔했다. 두 곡 모두 발매 1개월 만에 5만 장이 넘게 팔렸다. 그의 아내는 1950년대까지 4,000곡 넘게 발표하며 인기를 끈 황금심이다.

이난영은 초대 '가요의 여왕'이다. 1935년 '목포의 눈물'을 발표했다. 이 노래는 1934년 <조선일보>가 주최한 전국 6대 도시 '애향가' 가사 공모전에 응모된 3,000여 편의 작품 중 당선작이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격동의 시기에도 새로운 가수가 등장하고 히트곡이 탄생했다. '신라의 달밤'(1947), '굳세어라 금순아'(1953)을 부른 현인, '전선야곡'의 신세영, 백설희, 황정자 등이 대표적인 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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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이미자, 남진, 나훈아

1960년대부터 트로트는 더욱 발전한다. 본격적으로 장르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 게 이 시기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지난해 60주년을 맞이한 이미자가 이 시기의 대표 주자다. 1964년 '동백아가씨'가 3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트로트의 여왕'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1965년 창법이 일본풍이라는 이유로 '동백아가씨'와 이후 발표한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등이 방송 금지와 판매 금지까지 됐지만 이후에도 많은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한국 대표 여성 가수로 인기를 모았다.

1970년대에는 1965년 데뷔한 남진과 1966년 데뷔한 나훈아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시장 규모를 넓혔다. 남진은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고 팝 가수로 데뷔했지만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자신의 트로트곡 '울려고 내가 왔나'가 히트하면서 일찌감치 트로트 가수로 전향했다. 1968년 입대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역 후 1971년 '마음이 고와야지'를 발표하며 컴백했다. 1972년 '님과 함께'가 크게 인기를 끌며 한국 가요계의 대표 주자로 나섰다.

나훈아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으로 남진과 캐릭터부터 대조를 이뤘다. 많은 공연과 활동으로 대중 가까이에 머무른 남진과 달리 나훈아는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했다. 간드러진 꺾기 창법은 데뷔 초창기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1968년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하며 스타 가수로 떠올랐다.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공연 중 피습을 당했는데, 당시 남진 팬의 소행이라는 소문에 나훈아의 팬들과 서로 패싸움을 벌일 정도로 라이벌 구도가 치열했다. 꾸준히 인기를 끌며 활동해오던 나훈아는 2006년 각종 루머에 시달리다 해명 기자회견을 가진 후 활동을 중단했고 2017년 '남자의 인생'을 발표하며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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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송대관, 심수봉, 태진아, 설운도

'트로트 4대 천왕' 시대가 본격화됐다. 송대관은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히트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현철은 1982년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1983년 '사랑은 나비인가봐', 1987년 '내 마음 별과 같이'로 인지도를 높여왔는데, 1988년 '봉선화 연정'이 크게 히트하면서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올랐다.

태진아는 오랜 무명 생활 끝에 1989년 '옥경이'가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허스키하면서 목을 긁는 듯한 창법이 노래에 애절함을 더했다. 이후 1990년 '거울도 안 보는 여자', 1991년 '미안 미안해', 1992년 '사랑은 토요일 밤에'와 '노란 손수건'이 연이어 히트하며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설운도는 1983년 KBS 특별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출연해 부른 데뷔곡 '잃어버린 30년'이 하루 만에 크게 인기를 끌며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설운도는 매니저의 부재로 오랜 기간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면서 인지도도 떨어졌다. 그 이후 1991년 '다함께 차차차', 1992년 '여자 여자 여자'가 연이어 히트하며 '4대 천왕'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 시기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심수봉이다. 한국 1세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꼽힌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출전곡으로 선보인 '그때 그 사람'을 비롯해 많은 히트곡이 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사건이 벌어진 당시 현장을 목격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 금지를 당하고 정신병원에 끌려가기도 했다. 1984년 가수로 복귀해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인기를 끌면서 다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7년 '사랑밖에 난 몰라', 1997년 러시아어 노래를 한국어로 번안한 '백만송이 장미' 등이 크게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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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2000년대 장윤정, 홍진영, 송가인

트로트는 2000년대에 들어서 위축됐다.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결합한 '세미트로트'가 명맥을 이었다. 대표 주자는 장윤정이었다. 장윤정은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내 안의 넌'으로 대상을 받았지만 가수로 자리 잡지 못하고 단역배우, 재연배우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04년 세미트로트 '어머나'로 정식 데뷔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신명 나는 리듬과 반복되는 구절이 중독성을 주는 가사로 전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가 됐다. 이후 2집 <짠짜라>, 3집 <이따 이따요> 등이 연이어 히트를 했다.

그 뒤를 잇는 가수는 홍진영이다. 홍진영은 걸 그룹을 준비하다 몇 차례 데뷔가 무산됐고 2007년 걸 그룹 '스완'으로 데뷔했지만 소속사의 파산으로 해체됐다. 이후 2009년 트로트 '사랑의 배터리'로 데뷔하자마자 스타덤에 올랐다. 애교 섞인 말투와 매력적인 외모뿐 아니라 넘치는 흥까지 갖춰 젊은 층부터 노년층까지 사로잡았다. MC보다는 패널, 게스트로 예능 활동을 많이 하지만 다양한 매력을 어필하고 있다.

홍진영 이후 트로트 시장에서는 한동안 이렇다 할 스타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 공백을 깬 게 송가인이다. 송가인은 TV조선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에서 최종 우승인 '진'을 차지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세미트로트보다는 정통 트로트의 디바로 입지를 쌓아가고 있는 것도 그런 영향이 크다. 실제 데뷔는 싱글 앨범 <산바람아 강바람아 사랑가>를 발매한 2012년 10월이었다. 오랜 무명을 견뎌낸 지금은 전국 각지의 행사와 광고모델 등 섭외 요청을 받는 스타가 됐다.


시대를 품은 트로트

정통 트로트로 분류되는 장르의 히트곡들은 리듬과 가사에 시대의 아픔, 대중의 애환을 담고 있다. 시대별 트로트 히트곡을 살펴봤다.

  • 1935

    목포의 눈물
    트로트 초창기의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꼽힌다. 작사가 문일석이 애초 고복수에게 주기 위해 썼던 곡에 이 가사를 붙여 이난영이 불렀다고 한다. 애절한 멜로디에 일제강점기 한민족의 설움을 대변하는 듯한 가사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광주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해태 타이거즈의 대표 응원가로 불렸을 만큼 지금도 많은 이가 부르는 노래다.

  • 1964

    동백아가씨
    '가신님 그리워하며 울다 지쳐 마음이 동백꽃처럼 빨갛게 멍든' 여인의 한과 애상을 표현한 노래다.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해 주목받던 신예 이미자를 단숨에 '엘레지의 여왕'으로 올려놓은 노래로 그녀의 대표곡으로 꼽힌다.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은 대한민국 역사상 첫 앨범 판매량 100만 장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1968

    사랑은 눈물의 씨앗
    나훈아의 출세작이다. 1966년 '천리길'로 데뷔한 나훈아를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려놓은 노래다.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도 쓰였다.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은 발매 당시 1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이 앨범의 인기로 나훈아는 1969년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1970년 3월 서울에서 의문의 살해를 당한 25세 여성 정인숙의 사건을 빗댄 가사로 대학가에서 개사돼 불리기도 했다.

  • 1972

    님과 함께
    군 복무 후 가수로 컴백한 남진이 다시 정상의 가수로 올라설 수 있었던 히트곡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로 시작하는 쉬우면서도 마음에 힐링을 주는 인상적인 가사에 남진 특유의 시원한 목소리의 창법이 어우러졌다. 당시 언론은 촉망받는 신인이었던 나훈아와 남진을 라이벌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 1976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왕' 조용필이 부른 트로트곡이다. 1971년 통영 출신 가수 김해일이 발표한 '돌아와요 충무항에'가 원곡이다. 김해일 사망 후 조용필이 첫 솔로 앨범에 통기타 반주로 수록했지만 크게 반응을 얻지 못했고 1976년 가사 내용을 일부 바꿔 앨범에 수록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밴드 활동을 하다 솔로로 전향한 조용필의 첫 히트곡이다.

  • 1984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1979년 10·26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등의 조치를 당해 오랜 기간 활동을 못 했던 심수봉의 재기작이다. 1984년 방송 금지가 풀린 심수봉이 발표한 신곡 1집의 최고 히트곡이었다. 남자를 배, 여자를 항구에 비유한 가사에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청장년층의 고른 지지를 이끌어내며 인기를 끌었다.

  • 1989

    옥경이
    1972년 데뷔해 오랜 무명 생활을 했던 태진아의 인생을 단번에 바꿔놓은 노래다. '옥경이'가 인기를 끌며 태진아는 각 방송사 가요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그만큼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오랜 세월 고생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담은 가사가 인상적이다. '옥경이'가 실제 태진아의 아내 이름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태진아라는 가수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깊이 각인됐다.

  • 1991

    다함께 차차차
    1983년 '잃어버린 30년'이 크게 히트한 후 오랜 기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설운도의 새로운 히트곡이다. '차차차'라는 제목의 문구가 가사에 여러 차례 반복되며 중독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이 노래로 설운도는 '4대 천왕'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경쾌한 리듬이 돋보이는 노래로 설운도는 방송에서 노래와 함께 춤도 선보였는데 서툰 모습이 '엉거주춤'으로 불리며 화제가 됐다.

  • 2004

    어머나
    1999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지만 가수로 자리 잡지 못했던 장윤정의 첫 히트곡이면서 '행사의 여왕'의 등장을 알린 노래다. 이를 통해 중년층으로 좁혀진 트로트의 향유 계층을 다시 넓혔다. 흥겨운 노래에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가수의 트로트 도전이라는 점에서 10~20대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 2009

    사랑의 배터리
    홍진영의 솔로 데뷔곡이다. 사랑을 전기가 소모돼가는 배터리에 비유해 다시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연습생으로 오랜 기간 걸 그룹 데뷔를 준비했고 실제 한차례 데뷔까지 했던 홍진영은 이 노래로 단번에 스타가 됐다. 발표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노래방 인기곡 순위 상위권에 랭크돼 있을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 2017

    아모르 파티
    2013년 발매됐지만 2017년에 역주행해 대박을 터뜨린 곡이다.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과 트로트를 결합한 'EDM 트로트'인데, 2016년 7월 그룹 'EXO'의 출연이 예정돼 있던 KBS1 <열린음악회>에서 예상치 못한 흥겨움을 선사하며 화제가 됐다. 이후 김연자는 이 노래로 각종 방송과 행사 무대를 누볐다.

  • 2019

    합정역 5번 출구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유재석)이 불러 인기를 모은 곡이다.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라는 가사가 친숙하면서도 인상적이다. 유산슬은 이 곡의 흥행으로 연말 가요제에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실제 합정역 5번 출구가 네티즌 사이에서 명소가 됐다는 후문까지 전해질 정도다.

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김두리, 김은구(<이데일리>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
2020년 03월호

2020년 03월호

에디터
이예지, 김두리, 김은구(<이데일리> 기자)
사진
서울문화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