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가 문학적이려면, 무엇보다 삶이 문학적이어야 할 것이다. 일기는 삶의 기록이니까. 미국 작가 아나이스 닌의 대표작은 1931년 10월부터 1년간 쓴 일기를 그대로 옮긴 <헨리와 준>이다. 가족을 버린 남편과 헤어진 아나이스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뉴욕행을 감행한 것은 그가 11살이던 1914년이었다. 그는 지루한 대양 횡단 여행을 견디기 위해 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첫 일기를 쓴 그는 이후 평생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60년의 세월 동안 그가 남긴 일기는 약 150권. 그중 헨리 밀러를 만나던 1931년부터 1934년까지의 일기가 가장 양이 많다.
그는 일찍 결혼했다. 1921년 댄스파티에서 만난 휴 가일러와 결혼했을 때가 스무 살이었다. 남편과의 관계에 만족하려고 했던 그는 D.H.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읽고 깊은 영향을 받는다. 이후 그는 <D.H. 로런스: 비전문적 연구>라는 논픽션을 썼고 자신과 성적 모험을 함께해줄 다른 남자를 만난다. 헨리 밀러와 관계는 혼돈 그 자체였다. 아나이스는 부유한 은행가인 남편의 돈으로 전도 창창한 작가이지만 가난한 헨리 밀러의 생활비를 댔다. 헨리 밀러의 첫 소설 <북회귀선>의 출간 비용을 댄 것도 아나이스의 남편 가일러였다. 한편 아나이스는 헨리 밀러의 매력적인 부인인 준 맨스필드 밀러에게도 매혹당한다. 준과 헨리와 아나이스는 묘한 삼각관계에 빠진다. 그들의 이 미묘한 관계는 <헨리와 준>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우리 세 사람이 벌이고 있는 이 굉장한 게임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악마인가? 누가 거짓말쟁이인가? …누가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아나이스의 사생활은 헨리와 준만은 아니었지만 남편을 버리지는 않았다. "나도 말도 안 되는 모순을 인지하고 있다. 나 자신을 내줌으로써 남편을 더 사랑하는 법을 깨달았다니.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편을 택해 우리의 사랑이 비통함과 죽음에 빠지지 않게 보호하고 있다니 말이다." 자신의 일기에 그는 복잡한 마음을 이렇게 토로했다.
또 1955년에는 루퍼트 폴과 결혼해 미국 동부와 서부에 각각 남편을 두고 오가며 살았다. 두 남자를 속이기 위한 그의 노력은 처절했다. 자신이 써 보낸 모든 편지의 복사본을 보관하고, 알리바이로 댄 지인들의 이름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메모 카드를 만들어 '거짓말 상자'에 정리했다. 19년이 지난 뒤 결국 서로 모두 알게 되고 폴과의 혼인 관계를 정리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후로도 달라지지 않았다. 폴은 그가 197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간병하며 그의 곁에 머물렀다. 결국 그가 죽었을 때,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부고란에는 '폴 부인'으로, <뉴욕 타임스>의 부고란에는 '가일러 부인'으로 올랐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여성의 성과 사랑에 대한 탐색을 보여주는 페미니즘적인 에로티시즘 문학의 원류가 됐다.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1960년대 페미니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마도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지 않았을까? "나는 그저 사랑을 했을 뿐인데." 글 박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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