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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전유성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50년을 되돌아보니… 저란 인간, 참 기똥차게 살았네요.”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전유성을 만났다.

On June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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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전유성은 평소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2008년 경북 청도로 내려간 후엔 간간이 근황을 전할 뿐 언론과는 거의 마주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청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전북 남원의 지리산 자락으로 이사한 후 한 후배의 권유로 50주년 기념 공연 <전유성의 쑈쑈쑈>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울과 전주, 제주에서 열리는 <전유성의 쑈쑈쑈>는 데뷔 50주년을 맞아 후배들과 준비한 기념 공연이다. 최양락, 이영자, 주병진, 임하룡, 심형래, 전인권, 이문세 등 후배들이 번갈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이영자가 MC를 보고 조혜련이 골룸 분장을 한 채 관객석을 누비는 등 쉽게 보지 못할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전유성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 무대에 올라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또 여간 웃긴 게 아니다.


데뷔한 지 50년이 됐습니다.
솔직히 예상 못 했어요. <개그콘서트>를 기획하면서도(전유성은 <개그콘서트>의 기획에 참여했다) "천 회까지 방송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는데 정말 이뤄질 줄은 몰랐지. 그런 것처럼 나도 내가 50년이나 활동할 줄 몰랐어. 의식하지 않고 살다 보니까 어느덧 50년이 흐른 거지, 특별할 건 없어요.


지난 50년을 돌이켜보면 어떠세요?
잘 버텨온 것 같아요. 이 생활이 지겨워서 다른 것 좀 해보려고 청도로 떠났는데 거기서도 결국 똑같은 걸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아, 나는 그냥 이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고. 그런 의미에서 허튼짓 하지 않고 잘 버텨온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이번 공연이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33년 동안 함께 일한 친구 같은 동생이 어느 날 그러더라고. "50주년쯤 됐으면 공연을 한번 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처음엔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게 뭐 대수라고 말야. 그렇게 말하고 태국 빠이로 20일간 여행을 다녀왔는데, 돌아와보니 공연장 대관이 완료돼 있더라고요. 안 할 수 없어 하게 됐죠.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니까 긴장도 되고 재미있더라고. 아무튼 엄청 떨렸어요.


박중훈, 이영자 등 유명 연예인들이 지원 사격하면서 화제가 됐어요.
선배가 해달라는데 어쩌겠어요. 아마 후배들도 울며 겨자 먹기로 했을 거야.(웃음) 후배들에게 고마워요. 아무리 선배가 시켜도 하기 싫으면 안 했을 친구들이거든. (최)양락이나 (김)학래는 "형님이 발판이 돼주어야 우리도 50주년 공연을 할 수 있죠"라고 하더라고. 이 녀석들이 내가 하게끔 말을 해준 거지. 멘탈이 약한 나한테 되레 용기를 줬어요.


많은 개그맨이 '개그계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유가 있겠죠?
내 나이가 벌써 일흔하나예요. 후배들에겐 아버지뻘인 셈이지.(웃음) 그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지 무슨 이유가 있겠어. (김)미화 정도가 되면 선배가 많이 없어요. 기껏해야 나 아니면 (엄)용수지 뭐. 그래서 '개그계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생긴 거예요. 그리고 선배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당연히 좋은 이야기만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나는 오히려 솔직하게, 정직하게 말하는 친구들이 더 좋더라고. 이를테면 양락이는 나더러 "형님이 아이디어는 많다지만 연기는 못하잖아요"라고 말해요. 맞는 말이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참. 그런데 만약에 "형님은 연기도 잘하시잖아"라고 말하면 내가 그 친구를 만나겠어요? 가식이잖아. 난 가식 떠는 후배들은 쳐다도 안 봐요.


후배들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그지 같은 질문이 어디 있어?(웃음) 나부터 후배들의 이름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후배들은 이래야 한다고 논할 수 있겠어요? 저는 후배의 자질을 논할 자질이 없는 선배에요.


요즘 눈에 띄는 후배 개그맨은 누가 있나요?
송준근은 정말 독특한 캐릭터야(송준근은 <개그콘서트-준교수의 은밀한 매력>에서 느끼함이 넘쳐흐르는 부담 백배 준교수 캐릭터로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아무도 못 하는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멋진 재주가 있는 친구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 웃겨요. 요즘에 '그만했으면회'라는 코너가 생겼는데, 거기에 나오는 (박)소라도 너무 웃겨. 무표정으로 눙을 치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나는 이제 후배를 볼 때 어떤 캐릭터로 기억하곤 하는데 소라는 딱 각인이 됐어.


인생 상담을 요청하는 후배도 많을 것 같아요.
예전엔 종종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내 말이 다 구라라는 걸 아는 것 같아.(웃음) 어느 날 보니까 내가 남의 인생에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는 게 아니더라고. 인생엔 정답이 없잖아요. 근데 그걸 고작 몇 년 더 살았다는 이유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최근에 (조)원석이가 찾아왔었어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해답을 내달라더군요. 제가 그랬어요. "생각을 하나로 모아봐. 그리고 교회에 한번 가봐"라고 말야. 그 친구가 원래는 교회에 안 다녔는데 지금은 성경 필사를 할 정도로 독실한 신자가 됐어.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사람이 전도를 한 셈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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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그맨 그룹 '옹알스'는 자진해서 이번 무대에 올랐다. 강아지 분장을 한 '옹알스'는 언어 유희를 통해 전유성의 근황을 전하기도. 2 이성미·김지선·김효진·전영미는 콩트 개그를 통해 전유성의 과거를 낱낱이 폭로했다. 3 전유성의 데뷔 50주년을 축하하는 후배 개그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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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유성과 오랜 인연을 자랑하는 최양락, 박중훈, 김학래. 최양락과 김학래는 공연 6시간 전부터 대기실에서 함께하며 전유성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했다.
2 전유성에게 캐스팅당해 연예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는 이영자가 이날 MC를 맡았다.


혼란의 시대입니다. 삶에 의욕이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다려요. 의욕이 생길 때까지요. 죽을 거예요? 아니잖아. 그럼 견뎌봐요.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 만약 시한부로 한 달 뒤에 죽는다고 하면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겠지만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더 살 텐데 좀 더 살아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살아보니 그렇게 힘든 시기가 있더라고. 견뎌야지 어떡할 거야. 다 지나갈 거예요.


선생님도 분명 힘든 시간이 있었을 텐데요.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오셨나요?
술 마시면서 버텼지요.(웃음)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 술을 마시지 못하는데 한때는 엄청 마셨었지. 사람들과 어울려 취하고, 수다 떨고, 그러면서 힘든 걸 잊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엔 술이 고민이에요. 더 이상 술을 못 마시게 될까 봐 말이죠. 그게 낙이었는데…. 그래서 여행을 다녀요. 일상에서 탈피하고 싶어 떠나는 게 여행이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다만 회사나 가정에 얽매여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조금 자유로워서 자주 다닐 수 있는 거지. 도시는 도시대로 좋고, 시골은 시골대로 좋고.


기억에 남는 여행 에피소드 하나만 전해주세요.
몇 해 전에 남미 여행을 다녀왔어요. 비행시간만 24시간이 넘었지. 그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그 먼 곳을 어떻게 가려고 그러느냐"고. 그때 내가 그랬어. "돌이켜보니 인생이 참 빠르오. 지난 54년도 쏜살같이 지나왔는데 그깟 24시간이 뭣이 대수요. 그게 힘들어서 포기하기에는 남미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요. 포기하지 마시오."


선생님은 타협하지 않고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사람 같습니다.
타협을 모르는 정의감 투철한 남자는 아니에요. 이제는 관심을 안 가지는 것 뿐이지요. 귀찮거든.(웃음) 해보니까 사람은 안 고쳐져요. 단순히 습관을 지적하는 정도는 고칠 수 있겠지만 그 사람 본연의 심성은 쉽게 바뀌지 않지요. 그렇다면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만나는 수밖에 더 있어요? 아니면 내가 바뀌거나. 만약 그 사람의 그런 점이 불편하다면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왜 고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인간은 개개인이 다 완벽하기 때문이지. 스스로가 너무 완벽한데 누구의 말이 귀에 들어오겠어? 그런 완벽한 사람들이 만나서 부딪히니까 갈등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둘 다 너무 완벽하니까요. 사람은 완벽한 동물이냐고? 그럼, 완벽하지. 이보다 완벽한 동물이 어디 있겠어요? 혹자는 인간은 신과 달라서 완벽하지 않대요. 그런데 인간을 왜 신이랑 비교하죠? 사람은 사람이랑 비교해야지. 신을 직접 본 사람도 없으면서 말예요.


살면서 가장 잘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건 단언할 수 있어요. 쉬지 않고 일한 건 정말 잘한 일 같아. 남들은 노후를 생각해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노후 대책이라고 생각해서 돈을 안 모았어요.(웃음)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돈 모은다고 젊어서 고생한 다른 친구들은 지금 은퇴해서 일 안 하고 놀고 있는데 얼마나 무료하겠어. 그렇다고 돈을 엄청 많이 모은 것도 아니죠. 그런데 나는 돈은 못 벌었지만 지금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아주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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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의욕이 없을 땐 의욕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봐요.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더 살 텐데 좀 더 살아보고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견뎌야지 어떡하겠어요. 다 지나갈 겁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열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나는 돈벌이랑 관계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요. 그게 나를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지. 남이 만들어놓은 일은 왠지 하기 싫더라고요. 내가 잘하는 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좇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내가 시골에 내려가니까 누가 폐교를 줄 테니 아트 플레이스로 만들어보라더라고. 근데 다른 폐교들을 암만 봐도 너무 잘해놓은 거예요. 그것들보다 더 잘할 자신이 없어서 안 하겠다고 했죠. 그러다가 남원의 터널을 지나가는데 문득 '이 터널 입구를 돼지코 형상으로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주변을 수소문해서 '돼지코 터널'을 만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내가 도청이며 시청을 쫓아다니면서 관계자를 설득했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요. 누구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주는 때를 기다리고 있지요.


그런 아이디어의 원천은 뭐예요?
질투지. 누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면 질투가 나요. 왜 나는 저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고 말야. 그게 나를 더 자극시키지요. 최근에 이런 라디오 광고가 있어요. "날마다 좋은 날, 도루코 면도날". 너무 재미있지 않아? 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가끔은 한탄스럽기도 해.(웃음)


귀의 피어싱이 인상적이에요. 스니커즈를 신은 것도 그렇고요. 젊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요.
젊게 살려고 한다고 젊게 살아지겠어? 그냥 사는 거지요.(웃음) 피어싱은 젊었을 때 했는데 이제 와서 뺄 수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 한때 문신을 해보려고도 했는데 나를 대변하는 그럴듯한 문구가 생각이 안 나서 포기했어요. 훌륭한 말이 생각 안 나더라고.


선생님과의 대화,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사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하고 싶어요. 더 재미있는 인생이 펼쳐질 겁니다. 그리고 내 기사, 자극적으로 쓰지 말아줘요. 내 인생이 그렇게 자극적이진 않았으니까 말야.


전유성은 자기 말을 그럴듯한 단어로 포장하려 하지 않았다. 생각나는 대로 꾸밈없이 말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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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에디터
이예지
사진
이대원
2019년 06월호

2019년 06월호

에디터
이예지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