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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대여금고, 사실상 VIP 특혜

A(26세·관악구) 씨는 해외여행 전 집 안에 있던 귀중품을 챙겨 10년 가까이 이용한 주거래은행으로 향했다. 대여금고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은행원은 “예치금액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여금고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A씨는 “오랫동안 이용한 고객도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VIP만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On September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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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대여금고를 이용하려면 수억원 이상을 예치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에 위치한 KB국민은행 모 지점 전경.

시중은행의 대여금고를 이용하려면 수억원 이상을 예치해야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에 위치한 KB국민은행 모 지점 전경.

수억원 예치해야만 이용 가능한 ‘귀족 서비스’

시중은행은 현금, 유가증권 등 귀중품을 맡길 수 있는 대여금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을 비롯한 5대 시중은행과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일부 외국계 은행도 대여금고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형, 중형, 대형으로 나뉘어 있지만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소형과 중형만 이용하고 있다. 보증금은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소형 기준 15만~20만원, 중형 30만원, 대형 50만원 으로 책정돼 있고, 이용 수수료는 일부 은행만 보증금의 10% 선으로 받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은행 지점을 검색하면 ATM과 함께 대여금고 설치 여부가 나오기도 하고, 은행 홈페이지에서도 손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서비스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 고객들은 "은행에 금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자격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이용해본 적은 없다"는 대답을 내놨다. 신한은행 여의도지점을 찾은 고객 B(53세·영등포구) 씨는 "드라마에서 대여금고가 나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 (은행에 대여금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돈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것 같아 문의를 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당 지점에 대여금고 이용 자격 기준을 문의해보니 "펀드나 예금 등 장기 금융상품에 1억원 이상을 예치해야 자격이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신한은행 서초동 지점은 "8명 정도의 대기 고객이 있지만 3억원 이상의 금액을 예치해야 대기 고객에라도 이름을 넣어줄 수 있다"고 했다. KEB하나은행 강남지점은 "제일 작은 사이즈의 금고는 자리가 있다"면서도 "1억원 이상의 거래가 있어야 이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학동사거리지점은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자리가 없기 때문에 로열 고객이 우선이다"라며 "1억원 이상의 거래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은행 테헤란로지점도 "1억원 이상의, 기간을 정해놓은 금융상품 거래가 필수다"라고 답변했고, NH농협은행 수유지점도 "보통 2억~3억 원 정도의 펀드 상품에 가입돼 있고 농협카드 및 정기예금 거래 금액도 5,000만원에서 1억원을 상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구분 없이 최소한 1억원 이상, 최대 3억원 이상의 금액을 거래해야 대여금고를 이용할 자격이 생기는 셈이다. 시중은행이 명시한 대여금고의 이용 자격은 각 은행의 일정 고객 등급 조건을 충족하면 되지만, 사실상 해당 등급을 충족하더라도 은행의 각 지점이 자체적으로 정해놓은 금액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VIP 고객에게 밀려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시중은행의 대여금고 이용 자격은 '2등급(총자산 1,000만원 이상)' 이상이지만 실제 해당 은행의 영업지점에 확인하면 '1억원 이상을 예치해야 한다'는 말이 발목을 붙잡는다.

이에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세한 금액 조건은 영업점별로 자체적인 기준을 두고 있지만 본사의 규정은 '2등급 이상'이 맞다"면서도 "항상 대여금고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대여금고의 설치비용 및 관리비, 대여금고를 놓을 자리의 임대료 등 유지비용을 감수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원하는 고객은 많은데 모두에게 금고를 내줄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VIP에게 우선적으로 선택권을 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대여금고는 얼마나 안전할까?

시중은행들의 대여금고 제작을 도맡고 있는 모 금고 업체는 "화재와 침수 피해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업체 내부에 위치한 시중은행 금고 전시실.

시중은행들의 대여금고 제작을 도맡고 있는 모 금고 업체는 "화재와 침수 피해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업체 내부에 위치한 시중은행 금고 전시실.

시중은행들의 대여금고 제작을 도맡고 있는 모 금고 업체는 "화재와 침수 피해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업체 내부에 위치한 시중은행 금고 전시실.

수많은 은행 이용자들이 대여금고를 사용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단연 '안전' 때문이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의 대여금고가 도난당할 일은 제로에 가깝다"며 "은행 전체의 보안이 뚫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확언했다. 대여금고는 은행 내부 은밀한 공간에 설치돼 영업점 방문 고객들은 접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는 은행 직원이더라도 대여금고 담당 은행원이 아니면 출입하지 못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종전에는 고객이 금고를 이용하고자 하면 담당 직원이 함께 들어가 문을 여닫아줬지만 최근에는 바이오 인증 서비스가 도입되면서 고객 혼자 금고 관리 업무를 볼 수 있다. 국민, 우리, 농협, 신한, 하나, SC제일, 씨티 등 전국 2,000여 개 시중은행 지점에 20만 개 이상의 대여금고를 설치했다는 신성금고제작소 관계자는 "대부분의 화재와 침수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중은행에 대여금고를 설치할 때는 단순히 금고만 가져다 놓는 것이 아니라 금고실 자체를 제작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장소'를 구축하는 데부터 신경을 쓴다"며 "화재는 1,010℃에서 두 시간 정도 버틸 수 있고, 지하인 경우 침수 피해를 대비해 바닥을 높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밝혔다. 대여금고는 강철 스테인리스로 도금 처리가 돼 있어 웬만한 충격에도 강하다. 관계자는 "시중에서 사용하는 공구로는 절대 뚫을 수 없다"면서 "미국 UL(Underwriters Laboratories Inc)에서 가장 높은 안전 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안전성 측면에서는 완벽한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약관에서 '천재지변, 기타 불가항력으로 인해 임차인에게 생긴 손해는 은행이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과거 침수한 지점 대여금고에 침수 피해가 발생했을 당시 법원에서는 '중재' 처분이 내려졌었다"면서 "은행의 명백한 귀책사유가 있지 않는 한 보상을 해드리진 않는다"고 전했다.

시중은행은 대여금고를 빌려줄 때 보관 물품으로 화폐, 유가증권, 보석류와 같은 귀중품 등을 허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여금고는 부자들의 세금 도피처로 악용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한다. 때로는 부정하게 받은 돈을 숨기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지난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킨 최순실(62세) 씨는 하나은행 금고에 고가의 보석류와 입출금 전표 등 개인 귀중품 일부를 보관했다.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돼 100억원의 부당 수임료를 챙긴 최유정(49) 변호사도 시중은행 금고에 13억원을 보관했다. 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가족이 맡긴 시중은행 금고에서 패물과 보석류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법원의 제출명령 및 법관이 발부한 수색영장이 있는 경우'에 한해 고객의 대여금고를 임의로 열어볼 수 있도록 하는 약관을 두고 있다. 또 지방세, 국세 등을 체납할 경우에는 금고가 압류당할 수도 있다.
 

다른 금융사의 대여금고 서비스

시중은행이 아닌 일부 금융사에서도 대여금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의 일부 상호금융권과 증권사에서도 VIP 고객을 위주로 대여금고 서비스를 운영한다. 그러나 시중은행에 비해 대여금고 설치 지점이 상당히 적고, 이용 금액 기준 또한 더 높은 편이다. 삼성증권 이촌WM지점은 "삼성증권의 경우 우리 지점을 포함한 3곳에서만 대여금고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VIP 고객을 위주로 혜택을 드리고 있다"며 "5억원에서 10억원 이상의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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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취재
윤아름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문인영 기자(여성경제신문)
기사제공
여성경제신문
2018년 10월호

2018년 10월호

취재
윤아름 기자(여성경제신문)
사진
문인영 기자(여성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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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