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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엄마의 가정 교육

왜 유독 아시아 중 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배출될까? 왜 공공장소에서도 일본 아이들은 조용할까? 중국인 남편과 결혼해 일본에 살고 있는 주부 안민정씨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섰다.

On February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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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에 일본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라며 바라보는 풍경이 있다.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원래 추위를 안 타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면, 어른들은 두꺼운 옷에 목도리까지 하고 잔뜩 웅크리고 걸어간다. 이 아이러니한 풍경은 보육원이나 유치원에서도 펼쳐진다. 한겨울에도 아이들은 ‘맨발’이다. 으레 어른보다 아이를 더 따뜻하게 입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중국인 남자와 결혼해 일본 도쿄에서 살고 있는 한국 여자 안민정씨. 그녀도 이런 풍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니 놀라움은 더 컸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많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양말을 금지하는 이유는 양말을 신으면 미끄러져 다치기 쉬울뿐더러 아이들은 손과 발을 통해 체온을 조절하기 때문이래요. 또 발바닥을 자극하면 뇌 발달에 좋다는 의견도 있고요.” 안민정씨도 이런 일본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중국인 남편이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국은 아이를 무조건 따뜻하게 기른다고 해요. 좀 과하다 생각할 정도로 집 안에서도 솜옷을 입히는 일이 다반사니까요.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에게 양말을 신겨야 한다’고 해요. 반면에 저는 ‘따뜻하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죠. 어쩌다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는 날이면, (양말을 신기지 않은) 제 탓이라며 원망을 하기도 하죠.” 같은 동양권이라고 해도 육아 중 ‘보온’, 한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 사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기는 힘들다. 안민정씨는 한 번에 세 나라 문화를 경험하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게 됐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더욱 객관적인 시선을 지니게 됐다.

안민정씨는 일본 뉴스 전문 포털 ‘제이피뉴스’ 문화부 기자를 거쳐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삶을 담은 <모리걸과 초식남의 세상, 도쿄>(창해, 2010)와 <작은 습관으로 기적을 만드는 일본 엄마의 힘>(황소북스, 2015)을 펴냈다. 그녀가 국내에서 엔터테인먼트 일을 하다가 2006년 일본으로 어학연수를 떠날 때만 해도 일본에서 정착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일본어에 능통한 중국인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본인 친구가 남편을 소개해주었어요. ‘한국에 관심이 많은 중국 남자가 있다’는 거예요. 만나보니 어설프지만 한국어를 알아듣고 영화 <친구> 속 명대사인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고 받아칠 줄도 알았죠. 남편은 고등학생 때 일본으로 유학을 온 덕분에 일본어도 능숙하게 하고 일본 문화도 잘 알고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안민정씨는 남편과 결혼한 뒤 딸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일본은 또 다른 세계였다. ‘내가 알던 일본은 극히 일부였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고.

“엄마가 되니 엄격한 일본 엄마들, 밖에서는 활발하지만 실내에서는 얌전해지는 일본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일본 교육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고요. 그전까지 이방인이었던 제가 아이를 낳은 후로 마침내 일본 사회에 한발 들여놓은 느낌이었어요.” 공공장소에서 조용한 일본 아이들. 그 뒤에는 엄격한 엄마가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지하철에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엄마는 일단 내려서 아이를 진정시킨다. 동네 마트나 병원, 쇼핑몰에서 아이가 소란을 피우면 즉각적으로 저지하거나 아이를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일본인들에게 묻곤 해요. ‘언제부터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배웠나요?’ 모두가 이렇게 답하죠. ‘아주 어릴 때부터 주의를 받았어요.’ 말귀가 통하기 시작하면 일본 엄마들은 ‘타인에게 폐가 되니 조용히 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거예요.” 일본인들이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가 ‘자립심’이다. 한두 살만 되면 스스로 밥을 먹게 한다. 컵을 쥐는 법은 돌 전에 배우기 시작한다. 만 두 살쯤 되면 스스로 원하는 옷을 골라 입게 한다. “일본에서는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법을 연습시켜요. 어린아이라도 독립된 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거예요. 설령 아이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선택할지라도 ‘춥지 않겠니?’ 정도만 말하고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줍니다.”

‘기다려주는 힘’은 비단 자립심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안민정씨는 일본에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힘도 바로 여기서 나온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학생들이 가장 우수하다고 해요. 졸업 이후의 진로 선택에서 갈리는 거죠. 한국 학생들은 학위를 받고 나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선택하는데, 일본 학생들은 먹고살 만하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택한다고 해요.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연구를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일본 사회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을 우대하는 분위기니까요.” 비단 노벨상만이 아니다. 몇 대째 가업을 잇는 전통 공예 장인, 1백 년이 넘은 음식점도 많다. “일본의 저력은 보상이나 대가가 따르지 않더라도 꾸준히 한 가지 일에 충실한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그걸 인정해주는 분위기고요. 일본에서 전통은 곧 믿음이며, 사람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가죠.”

안민정씨는 일본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한국이 아이를 키우기 더 좋은 환경이라고 말한다. 한국이 일본보다 영어 교육 면에서도 앞서 있고, 학원 시스템도 우수하다. 엄마가 원한다면 아이를 맡길 수 있을 정도로 보육 시설도 잘되어 있다. 그런데도 한국 엄마들은 늘 “애 키우기 힘들다”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소연한다. “한국 엄마들은 아이가 잠들면 그때부터 집안일을 하죠. 집안일도 완벽해야 하고, 아이에게 책도 많이 읽어줘야 하고, 워킹맘으로 일도 잘해야 하고…. 스스로 너무 많은 부담을 떠안고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 시간을 만들어요. 무엇보다 ‘희생’이라는 말은 쓰지도 않죠.” 일본 엄마들이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집안일에도 철저하게 ‘효율’을 따지기 때문이다. 요리는 ‘얼마나 짧은 시간에, 적은 돈으로, 영양가가 풍부한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카레를 만들면 3일을 먹는 것은 기본이다. 첫날 카레를 먹고, 둘째 날은 카레우동을, 셋째 날에는 카레 돈가스를 만드는 식이다.

“일본 요리책에 자주 등장하는 말은 ‘시간 단축’이에요. 쿠킹 포일 안에 각종 채소, 생선, 버터를 넣고 소금과 후추를 뿌려 만드는 ‘포일구이’는 아이가 있는 일본 가정에서 자주 만드는 요리예요. 빨리 조리되고 설거지도 필요 없어 인기가 높아요. 아이 이유식도 따로 만들지 않고, 어른 요리를 만들 때 간만 약하게 해서 주곤 해요.” 청소도 마찬가지다. 일본인의 집은 의외로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고 지저분한 집이 많다고 한다. “일본에서 청소란, 청소기를 돌리고 물건을 제자리로 갖다 놓는 것이 전부예요. 가족이나 친구, 이웃의 방문이 잦은 한국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지인을 거의 초대하지 않고 집을 가족들만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서 청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일본 육아의 핵심은 엄마들의 희생이 아니며, 엄마가 행복해야 가정이 행복하다는 가장 근본적인 이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가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
 

일본식 교육 문화

0세부터 시작하는 일본의 재난 대피 훈련
일본 보육원에서는 재난 대피 훈련을 매달 실시하고 1년에 한 번 대규모 훈련을 한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자기 몸을 지키는 방법을 익힌다.

사과와 책임을 강조하는 일본의 교육 문화
보육원뿐 아니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나도 선생님들은 부모에게 누구의 잘못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시시비비를 따지는 대신 대응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하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목욕 문화에서 다져지는 일본의 가정교육
일본 사람들은 매일 저녁, 거의 같은 시간에 목욕을 한다. 좀처럼 가족과 대화 시간을 갖지 못하는 바쁜 아버지도 입욕 시간을 이용해 아이들과 이야기하며 교감을 나눈다.

어릴 때부터 배우는 인내와 절제
일본 보육원에서는 ‘가시테(빌려줘)’와 ‘준방코(순서대로)’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만 1세가 되기도 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허락을 구하고 친구가 빌려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귀에 못이 박이게 듣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일본 엄마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입버릇처럼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니 조용히 하라”고 가르친다. 같이 장을 보러 갈 때도, 밖에 놀러 나갈 때도, 심지어 집 안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는 말이다.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두경아(프리랜서)
사진
최항석
2016년 02월호

2016년 02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두경아(프리랜서)
사진
최항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