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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시대의 원초적 욕망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수상자 전시로 류성실(1993년생)의 개인전 <불타는 사랑의 노래(The Burning Love Song)>를 개최한다.

UpdatedOn September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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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 포스터.

<불타는 사랑의 노래> 스틸이미지, 2022, 싱글채널비디오, 10분
©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불타는 사랑의 노래> 스틸이미지, 2022, 싱글채널비디오, 10분 ©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불타는 사랑의 노래> 스틸이미지, 2022, 싱글채널비디오, 10분 ©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작가 류성실은 짧은 작가 경력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이미지의 캐릭터들과 현실을 풍자하는 대담한 서사, 그리고 1인 미디어의 콘텐츠 생산 방식을 차용한 작업으로 주목받으며 역대 수상자 가운데 최연소로 제19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수상했다. 과도하게 미백 화장을 한 욕망과 혐오 사이의 이미지를 작가 스스로 연기한 BJ 체리 장 캐릭터의 경우, 아프리카TV나 유튜브의 실제 미디어 플랫폼에서 활약하며 현실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류성실의 작품 세계는 압축 경제성장 이후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은 특유의 졸부 근성과 오늘날 우리에게 강요된 단 하나의 통치 권력인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예리하게 직시한다. 다만 그는 양극화나 빈부격차와 같은 파생적 결과를 성찰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그 자신을 포함해 돈에 대한 원초적이고 강렬한 개인들의 욕망을 추적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의 유기적인 관계가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체리 장의 ‘대왕 오빠’나 나타샤의 ‘사장님’으로 간주되며 후방에 머물던 이대왕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등장시킨다. 기회주의적 자본가이자 문어발식 경영인의 표본으로 등장하는 그는 과거 대왕트래블 사업을 통해 효도 관광을 속물적이고 변태적인 것으로 타락시키면서까지 이윤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번 기회에 코로나 사태로 위기에 봉착한 여행업 대신, 동시대의 수많은 죽음에서 착안한 장례 사업, 그중에서도 생애주기가 짧아 극강의 회전율을 보장하는 애견 상조회사를 차린다.

기성의 장례식과 화장장의 절차를 차용한 전시 공간에서 관객은 어느 애견의 죽음과 애도의 예식에 동참하게 된다. 약 15분간 압축적으로 거행되는 일련의 화장 절차를 통해 죽음마저도 철저하게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이대왕의 사업 수완을 목도한다. ‘봉사’와 ‘최고급’, ‘기도’ 따위의 마케팅 콘셉트를 업계 선배인 체리 장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아 실천하면서 돈보다 예술을 지향한다며 직접 작곡한 노래 ‘진짜배기 사랑’을 불러 견주의 심금을 울린다. 그 와중에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로 직종을 바꾼 나타샤는 죽은 강아지에 빙의한다는 사기성 짙은 필살기를 가진 인물로 재등장한다. 그는 죽음의 예식 앞에서 심정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주들을 무방비 상태로 내몰고 지출을 늘리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물들 사이의 위계는 지위나 나이, 성별에 의해 구분되기보다는 돈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신박한 창의성에 의해 결정되는 모양새를 보여준다. 애견 화장장은 애도의 장소이지만, 사업 확장을 노리는 이대왕 자신의 홍보의 장이기도 하다. 화장 순서를 알리는 전광판마저도 놓치지 않고 지역 광고 방송처럼 본인의 인터뷰 영상을 송출하는가 하면, 회사 사옥에 놓이는 창업주의 흉상처럼 화장장 벽면을 자신의 영웅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활용한다. 다만 화강암 부조가 아닌 번들거리는 시트지가 이를 대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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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전경, 2022, 영상 및 설치 사진 김상태 ©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불타는 사랑의 노래> 전시전경, 2022, 영상 및 설치 사진 김상태 © 류성실, 에르메스 재단

짐짓 엄숙한 화로의 반대편에서는 총천연색의 조악한 이미지들로 그의 영웅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대왕의 사업적 성과와 청사진을 빼곡하게 그려 넣은 벽화는 그간 비디오가 해온 길고 긴 이야기 서술의 역할을 단 하나의 평면이 대신할 수 있도록 이미지의 과잉을 이루는데 이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의 정보를 전달하려는 광고판의 속성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거기에는 돈에 집착하는 장사꾼의 이미지를 세탁하고 싶은 그의 또 다른 욕망도 투영된다. 한가하게 노래하는 자아에 이어 목가적인 그림을 그리는 이대왕의 모습은 사이비 종교 지도자 슈프림 마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예술을 자신의 취약점을 가리는 데 활용하면서 시시하고 상투적인 것으로 전락시키고 만다.

현실 사회에서 목격했을 법한 속물적인 인간상의 의기양양함은 종종 예기치 않은 균열에 직면하기도 한다. 가끔 어디선가 터지는 녹취록의 존재가 그것인데, 이미지 정글의 한 부분에 노출된 QR코드를 타고 들어가면 이대왕이란 사업가는 현재 당국의 수배를 받는 경제사범이며 실은 경제에 관한 철학도 지식도 미천한 인간이란 사실이 폭로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타격이 그의 물질을 향한 불타는 사랑과 신사업에 대한 열망을 꺾긴 쉽지 않을 것이다. 화장터 한구석에서 서그럭거리며 회전하는 플라스틱 화환은 마치 오물을 닦아내는 세차장의 솔처럼 자본가의 부도덕함과 비천함을 깨끗이 닦아내는 존재다. 전시는 2022년 7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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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Guest Editor 김선아
Cooperation 에르메스

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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