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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의 회빙환을 읽는 법

최근 웹소설계의 이슈는 단연 ‘회빙환’이다. 회빙환은 ‘회귀’ ‘빙의’ ‘환생’을 뜻하는 웹소설 용어로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고 웹툰으로까지 이어졌다. 현대인은 왜 회귀, 빙의, 환생을 꿈꾸고 갈망할까. 회빙환이 웹소설의 당연한 성공 공식이 된 이유를 짚어본다.

UpdatedOn July 04, 2021


웹소설은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소설 콘텐츠를 일컫는다. 웹소설은 전문 플랫폼에서 5,000자에서 5,500자 내외의 분량이 100원의 가격으로 거래되며 텍스트는 대부분 판타지나 로맨스, 로맨스판타지나 SF, BL과 같이 장르 문학이다. 인터넷 연재 소설은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나왔으나 웹소설이라는 고유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2013년 네이버 웹소설 공모전 이후부터이다. 그후 8년간 웹소설 시장은 드라마틱한 성장을 일궈왔다. 영상 플랫폼이 범람하고 수많은 BJ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시대에 웹소설이 인기를 얻는 건 아이러니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추산한 2018년 웹소설 시장 규모는 약 4,000억원으로 2013년 약 200억원 규모에서 5년 만에 40배 이상 급성장하였고, 2017년 시장 규모 2,700억원과 비교해도 1년 만에 150%의 성장세를 나타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간한 <2020년 출판시장 통계>에 따르면 만화, 웹툰, 웹소설 부문 주요 출판사의 총매출액은 약 1,487억원으로 전년 대비 17.3% 증가하였다. 이 외에 2020년 주요 전자책 (웹툰·웹소설) 플랫폼 기업의 총매출액은 총 7,492억원으로 전년 대비 33.9% 증가하였다.

산업의 규모만큼 텍스트의 양 역시 어마어마하다. 웹소설은 평균 유통 작품 수 8만 2,322편으로 월 평균 1만 45건이 등록되고 있으며 1일 평균 조회수만 201만 2,200회에 이른다. 웹소설 25편이 종이책 한 권 분량이라는 걸 감안하면 하루에 401.8권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소설이 연재된다는 소리다. 그럼 일견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듯한 웹소설이 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할까? 그것은 웹소설이 장르 문학이라는 형식 안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창작·소비되는 콘텐츠이며, 바쁜 현대인에게 이러한 경제적 독서 행위가 무척이나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장르 문학이 비슷하고 뻔해 보이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장르란 캐롤린 밀러가 <사회적 행위로서의 장르>에서 한 정의처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수사학적 방식이 정형화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장르 소설의 독해는 작가와 독자가 코드나 클리셰를 통해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하고 읽어야 할지 상호간에 약속을 해두었고, 그 약속의 범주 안에서 디테일한 차이를 즐기는 놀이이다. 그렇기에 창작자와 소비자는 구조나 틀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빠르게 접속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욕망을 해소하고, 다시 빠르게 나올 수 있는 숏폼 콘텐츠. 그것이 바로 웹소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웹소설에서 주로 소비되는 욕망은 무엇인가? 다양한 키워드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유명한 키워드는 단연 회귀, 빙의, 환생 이 세 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은 왜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고 누군가의 몸에 깃들고 싶어하며, 다른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실패에 대한 공포, 그리고 성공에 대한 강박을 나타낸다.

2020년과 2021년을 대표하는 밈 중에선 ‘라고 할 때 살걸’이 있다.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할 때마다 나오는 말이다. 이는 가격이 오를 때마다 ‘왜 나는 지금 이렇게까지 가격이 오를 줄 모르고 사지 않았나, 남들이 다 살 때 살걸, 또는 남들이 다 팔 때 살걸, 나도 좀 더 관심을 가질걸’이라고 뇌까리는 청년들의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비슷한 방식으로 ‘벼락거지’란 말도 흔히 쓰인다. 남들이 다 벼락부자가 될 때 혼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거지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고, 눈치가 빠르며 재수가 좋은 사람들은 빠르게 사회를 파악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만약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비트코인이 이 정도 가격이 될 거라고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또는 주식시장이 이 정도로 활황이 될 거라고 10년 전에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웹소설에서 유행하는 회귀·빙의·환생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몸을 얻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서사를 끌고 나가는 외피에 불과하다. 근래 유행하는 웹소설의 구조를 주목하자. 자기가 즐겁게 읽었던 소설, 즐겁게 플레이한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미래의 지식을 선점하거나, 현실의 발전된 과학기술과 공업기술을 바탕으로 중세 시대에서 선전하거나, 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모두 체험하고 실패했던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는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고난을 해결할 지식을 얻는단 점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자신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우리가 무엇을 믿고 따라야 할지 모르는 텅 빈 시대가 왔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피로감에 휩싸여 살아간다고 분석했다. 미래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다는 건 이러한 피로감에서 탈출하고 안전하게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나’라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1990년대부터 모든 문학의 주제는 ‘욕망’을 관통했다. 웹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제도권 문학은 욕망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독자에게 관찰시켰다면 웹소설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 공통의 욕망을 확인한 뒤, 욕망을 실현하는 주인공 캐릭터를 통해 대리만족을 추구한다. 대중은 사회의 억압에 저항하고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실현하는 캐릭터들의 서사를 읽으며 현실을 버틸 힘을 얻는다.

그러니 여러분은 웹소설을, 그리고 웹소설의 유행을 단순히 말초적 쾌락이나 욕망의 키워드로 읽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조금 더 내밀히 살펴보기 바란다. 그 속에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대중의 아픔과 고통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해결할 유쾌한 저항이 녹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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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이융희(청강대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문화연구자)

2021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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