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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이 된 백만장자

어느 날 도착한 증권가 정보지에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청담동 백만장자로 불리며 유명세를 치르던 이희진이 사기꾼이라는 내용이었다.

On October 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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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진은 영웅이었다. 빚더미에 올라앉은 가정 형편 탓에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못 갈 정도로 ‘흙수저’였던 그가 주식 투자로 자수성가한 ‘금수저’가 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방송과 언론은 이희진을 ‘주식 부자’ ‘청담동 백만장자’라고 칭했고, 스스로도 부와 명예를 과시하며 유명세를 즐겼다.

그는 청담동에서 꽤 핫하다고 소문난 라운지 바 건물 맨 꼭대기 층에 살았다. 집 안에는 수영장이, 옥상에는 넓은 정원이 있는, 월세값만 5천만원인, 약 2백 평대의 초호화 팬트하우스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타고 다녔다는 부가티, 국내에 몇 대밖에 없다는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을 소유하며 부를 과시했다.

“람보르기니 타고 다니면서 쉽게 여자를 만나고 잘난 척 하는 남자들을 한번에 ‘오징어’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생각하다가 부가티를 샀다”는 이희진은 부러움과 신봉의 대상이었다. “나도 실패한 경험이 있고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 나의 과거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던 이희진의 말에 ‘나도 금수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개미 투자자들은 전 재산을 투자했다.

2014년 그가 설립한 투자자문사 미라클인베스트먼트에서 관련 정보를 듣기 위해서는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야하는데, 18개월에 500만원의 회원 가입비가 든다. 유료 가입 회원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청담동 청년 주식 부자’라 불리던 그가 지난 9월 6일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긴급 체포’는 ‘중대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피의자를 수사기관이 법관의 체포 영장을 발부받지 않고 체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동생도 구속 수감됐다. 검찰이 이희진을 구속하면서 밝힌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금융 투자업 인가 없이 투자매매회사를 설립해 고액의 주식을 매매한 혐의. 둘째, 비상장 주식에 대한 성장 가능성을 사실과 다르게 포장해 거액의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 셋째, 원금을 보장하며 고수익을 올려주겠다고 투자자들을 현혹한 혐의다. 위 혐의가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최하 5년,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최대 벌금은 위반 행위로 얻은 부당 이익인 1백50억원의 3배다. 이희진이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황색 수감복을 입고 양 손목은 포승줄에 묶인 채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설 때 사람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형사들에게 끌려가는 그의 뒤에 대고 욕을 퍼부었다. 각종 주식 방송은 물론 종편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잘나가는 주식 전문가였던 이희진이 한순간에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희진은 자신의 유명세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 후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의 주식”이라고 소개하면서 돈을 벌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신이 실제 소유하고 있는 ‘P2P업체(개인 간 대출 중계업체)’인 레인핀테크에 투자하라며 “이 회사는 부동산, 주식, 에너지업체 등에 다양하게 투자하고 있는 성장 가능성이 굉장히 큰 회사”라고 설명한다.

그를 주식 전문가로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에게서 투자금을 모아 자신의 동생이 운영하는 투자 회사를 통해 팔아치운다. 손해를 본 투자자들에게는 “더 좋은 상품을 소개하겠다”는 말로 2차 투자를 유도한다. 싼값에 사들인 비상장 주식을 “상장하면 10배 이상 상승할 유망 주식”이라고 속이기도 했다. 이렇게 얻은 부당 이익이 1백50억원이 넘는다.

2016년 4월 부산 강연과 투자자들과의 SNS 대화에서 “레인핀테크에 대한 투자는 5천만원까지 예금자 보호를 받는다”고 말한 사실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대부업체인 레인핀테크에 대한 ‘유사수신행위’다. 현행법에서는 어떤 이유를 대든 원금을 보장한다든가, 확정 수익률을 제시하면서 돈을 끌어 모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투자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던 이희진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면서 그 충격이 증권 정보업계는 물론 증권가와 방송가를 강타했다. 온라인에는 ‘이희진 닷컴’까지 등장해 그의 비리를 고발했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1천 명이 넘고, 사이트 일일 방문자는 4천~5천 명 수준에 이른다.

사람들이 이희진의 사기 혐의에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방송과 언론을 통해 ‘백만장자’로 포장하며 신뢰감을 만들어온 그의 행보에 대한 배신감 때문일 것이다. 그가 유명해지고자 한 것도 결국은 투자자를 끌어 모으기 위함이었다. 무료로 주식 강연을 펼쳐온 이유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건 피해자들이 손실 금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실형을 살고 나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가 재력을 동원해 유명 로펌 등을 앞세운다면 실제 형량도 그리 무겁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었을까? 그의 명성은 모래보다 더 쉽게 무너져 내렸다. ‘신’이라 불리던 이희진은 사기꾼이었고, 그를 좇아 일확천금을 꿈꾸던 투자자들의 장밋빛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초호화 팬트하우스 직접 가보니
이희진은 수천억원대 자산을 과시하듯 집을 화려하게 꾸몄다.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도록 비밀스럽게 설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한눈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집이 나타난다. 바닥을 대리석으로 깔았고, 거물급 중국인 투자자가 좋아한다는 황금빛으로 꾸몄다. 일반적으로 노란빛은 ‘재물’을 상징하는 색으로 알려져있다. 그가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도 주식 용어로 지었다. ‘종가가 시가보다 높게 끝나는 것’을 의미하는 ‘양봉이’였다.
 

이희진이 유명해진 결정적 계기는 ‘슈퍼카’였다. 국내에 몇 대밖에 없다는 부가티,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을 타고 등장하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의 청담동 집 주차장에는 여전히 럭셔리카가 주차돼 있다.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던 수십억원대 럭셔리카는 곧 검찰에 압류된다.

CREDIT INFO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윤종섭, 서울문화사 DB
2016년 10월호

2016년 10월호

취재
이예지 기자
사진
윤종섭, 서울문화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