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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연소 전용기 사무장 김모란 교수가 말하는

시간당 5백만원, 대한민국 VVIP만 이용하는 전용기의 세계

‘매력’ 을 찾아 지구를 3백 바퀴를 돌고 돈 사람이 있다. 바로 <매력-마음을 훔치는 기술>의 저자 김모란 교수다. 그녀는 1300 대 1의 경쟁을 뚫고 역대 최연소 전용기 사무장을 맡아 국내외 0.0001%의 VVIP를 담당했다. 시간당 사용료 5백만원이 넘는 전용기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On March 14, 2014


예쁜 여자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매력 있는 사람은 드물다. 사랑에 빠져 한 없이 아름답다고 여겼던 애인이 변심 후 꼴도 보기 싫은 얼굴로 변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1997년 항공사에 입사해 2013년 부천대학교 교수가 되기까지 자신의 무기를 ‘매력’으로 정의한 김모란 교수를 만났다. 전 문대를 나와 스튜어디스로 입사하고, 최연소로 전용기를 타더니 이제는 대 학교수가 되었으니 왜 안 그렇겠는가? 게다가 이제는 책까지 냈다.

교수가 되고 책을 집필하게 된 데는 미래에 대해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잡이 가 되어주고픈 마음이 컸다. 첼리스트를 꿈꾸던 어린 시절, 하루아침에 집 안이 어려워져 학비를 걱정하며 인하전문대를 마쳤고, 돈을 벌기 위해 대한 항공에 취직했던 그녀였기에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안다. 명문 대를 나와 외국에서 유학한 교수들과의 차별점을 스스로 찾아보기도 한다. 물론 항공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올 때는 적잖은 마음고생을 했다. 나름 촉망 받는 직원이었기에 무거운 마음이 더 컸다. 부임하고서도 한동안 회사를 배신한 것 같아 괴로웠다고.

대한항공 최고 승무원 되기까지
하지만 부천대에서 좋은 인재를 키워서 보내는 게 이제 그녀의 몫이다. 물론 가르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오 래전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맡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를 가르치는 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 은 몰랐다고.

그냥 주어진 기회는 아니다. 승무원 생활을 하는 동안 잠을 쪼개가며 노력한 결과다. 모범 승무원으로 표창을 받던 무렵 그녀는 실전이 아닌 이론에 목마름을 느꼈고 주저하지 않고 공부를 시작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 교수는 이 모든 행로의 근원이 자신의 ‘매력’에서 기인됐다고 정의한다. 공주병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잘것없는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감히 ‘매력’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부족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는 것, 꼭 찾아야 할 ‘나만의 빛’, 나는 그것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매력이야말로 다른 사람은 가지고 있지 않은 나의 가장 빛나는 모습이자, 충실히 쌓아 내 생애에 꼭 맺어야 할 결실이죠.”
김 교수는 기억나는 고객으로 월드스타 김윤진을 지목했다.

“김윤진씨의 매력은 뛰어난 연기력과 외적 아름다움만이 아니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수수함과 겸손한 모습에도 전혀 가식이 없었죠. 할리우드 여배우인 그녀가 예상대로 화려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녀를 그저 ‘미국에서 성공한한국 여배우’ 정도로 기억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녀에게는 ‘수수함과 진실함’ 이란 반전의 매력이 있었어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김윤진은 김 교수의 책에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그녀가 직접 편지를 쓴 뒤 PDF로 구워 이메일로 보낸 결과다.

전용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30대 초반에 객실 사무장이 되고, CEO와 유명 인사들이 주로 탑승하는 VVIP 전용기의 최연소 사무장으로 발탁된 김모란 교수. 여기까지만 들어도 호기심이 발동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손사래를 친다.

“어휴, 저보다 훨씬 많은 스토리를 지닌 선후배가 얼마나 많은데요. 단지 제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이유로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책을 낼 수 있는 것뿐이에요.” 그렇다. 전용기 승무원은 금기 사항이 많다. 일단 전용기 안에서 벌어진 일을 외부로 발설하는 것은 금물이다. 승무원들끼리도 특별히 말하지 않으면 누가 탑승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6천5백 명의 승무원 중 전용기 탑승자는 채 5명이 되지 않는데, 주로 15~20년 차 사무장급 고참 스튜어디스 중에서 발탁된다. 전용기라는 은밀한 단어를 들으면 어쩐지 남들은 모르는 고급 정보를 쉽게 접했을 것 같지만 역시 고개를 젓는다. 고객이 눈치를 주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알아서’ 비켜드리는 센스까지도 전용기 승무원은 갖춰야 한다.

그럼에도 여러 재밌는 말이 나돌기도 한다. “G-4를 타는 회장님의 주식을 사라”가 그중 하나다. 좋은 투자 정보를 듣는 일은 전혀 없지만 G-4를 탄다는 건 회사가 승승장구한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가 모신 고객 대부분은 국내 재벌 총수들이다. 그렇다면 그 좋다는 G-4의 내부는 어떨까? 은근히 궁금해진다.

“하늘에 떠 있는 고급 응접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화장실에도 창이 있어 구름을 바라볼 수 있고요, 앞뒤 자리 간격이 퍼스트 클래스에 비해서도 아주 넓죠. 저도 G-4를 처음 탓을 때 엄청 놀랐어요.”

G-4 전용기는 한 시간 사용료만 5백만원이다. 그녀가 탔던 G-4는 지난해 12월 퇴역했으며 지금은 그보다 더 큰 기종 2대가 전용기로 사용된다. 사용료도 시간당 1천만~2천만원으로 올랐다.

기내식의 메뉴도 궁금하다. 전용기는 고객이 정해져 있으므로 고객의 식성에 맞춰 음식을 준비하면 된다. 일단 퍼스트 클래스에 나오는 캐비아와 거위 간 요리 등 고급 메뉴는 기본이고 고객이 자주 찾는 와인과 샴페인 등은 따로 챙겨둔다. 비서실의 “저희 회장님은 새우깡을 좋아하십니다”와 같은 귀띔은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모든 회장님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바로 라면이다.

“회장님들도 라면을 많이 드세요. 외국에서 들어오실 때는 십중팔구 라면을 찾으시죠. 자리에 앉으시면서 ‘나 라면 좀 끓여줘’ 하시기도 하고, ‘밥 말아 먹게 밥도 같이 줘’ 하시는 분도 계시죠. 김치는 없지만 계란을 풀어드릴 때도 있어요.”

전용기 탑승에 영광만 있는 건 아니다. 비행기 한 대에 단 한 명의 승무원만 탑승하므로 책임이 막중하다.

“전용기 근무가 힘든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과도한 서비스를 해야 해서가 아니에요. 모든 걸 혼자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 어렵죠. 임기응변에 능해야 하고 책임감도 있어야 하죠. 게다가 진짜 회사의 대표나 다름없으니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조심스럽거든요.”

김 교수는 전용기를 타면서 배운 점도 많다. 우리가 흔히 하는 ‘상류층’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게 그것이다.

“우리는 흔히 월급쟁이라서 힘들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뭐랄까, 소위 ‘상위 몇 프로’라 말하는 분들을 곁에서 보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돼요. 총수를 수행하는 분들도 ‘밥은 언제 먹나?’ 할 때가 다반사예요. 대기업 사장님이지만 회장님 곁에선 그저 직원에 불과하니까요. 여러 명이 탑승하는 게 아니니 회장님의 시간에 맞춰 식사하고, 하다못해 잠을 자는 시간도 정해져 있죠. 회장님이 와인을 안 드시면 입맛만 다시다 내리는 분도 허다해요.”

평소에는 퍼스트 클래스를 타며 대접받는 분들도 그러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김 교수는 자기 자리에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큰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에는 전용기에서 본 재벌 총수들의 모습이 큰 영향을 끼쳤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예요. 바로 독서죠.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분들이지만 독서광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요. 신문도 밑줄 치면서 읽으세요. 연세가 지긋한 분들이 그럴 때는 사실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죠. 한번은 비서에게 책을 잔뜩 사오게한 회장님께 ‘어쩌면 그렇게 다독을 하세요?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책 읽을 시간이 지금밖에 없어. 휴대폰과 팩스, 보고 등 아무 방해도 받지 않으니까’라고 답하시더군요.”

김 교수가 바쁜 승무원 생활 중에도 틈틈이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전용기 고객은 역시 첫손님이다.

“국내 최상위라 할 수 있는 그룹 회장님을 모시고 인도 현지 공장까지 가는 것이 제 첫 전용기 비행이었어요. 1997년 입사했지만 정기 노선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한 번도 뵙지 못한 분이었죠. 걱정이 돼 회사 정보를 샅샅이 찾아 기업 문화도 공부하고 그랬는데, 막상 대면하니 참 푸근하신 분이셨어요.”

당시 그분이 베푼 친절로 인도 현지 회사도 견학하고, 첫 비행의 긴장감을 풀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무래도 젊은 총수보다는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편안한 것 같다고.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독서광
서비스만큼은 베테랑인 부천대 항송서비스과 김 교수. 하지만 그녀에게도 고난의 시절은 있었다.

“한번은 영국 기업의 총수가 퍼스트 클래스를 타셨어요. 그런데 그날따라 퍼스트 클래스 전체에 혼자 탑승하셨고, 그러다 보니 저는 완전 그 고객에게 몰입했죠. 수시로 드나들면서 불편 사항을 체크하고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라든지 컨디션을 묻곤 했는데, 그분이 저를 따로 부르시는 거예요.”

고객의 부름에 달려가서 들은 소리는 “부를 때까지 오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이런 과정을 통해 김 교수는 서비스는 결국 상대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거라는 걸 체득했다. 친절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혼자 있는 시간을 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결국 좋은 서비스다.

김 교수는 젊은 총수들은 대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승무원과는 사적인 대화는 일절 나누지 않고 본인 업무만 본다. 승무원에게도 비서 대하듯 사무적으로 얘기한다고.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이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부분이다. 친절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친절이 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머도 상대와 충분한 교감이 있을 때만 통하는 것이다. 가령 승무원이 “회장님, 오늘 넥타이가 참 멋지세요”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은 “딸뻘인 젊은 아가씨에게 이런 말을 다 듣네” 하면서 흐뭇하게 웃지만 반대로 기분 나빠할 수도 있다. 이런 건 통계도 없고 미리 재단할 수도 없다. 결국 그간의 경험과 고객에 대한 관심이 관건이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서비스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개개인에 맞게 교수법을 연구해야 하니까요.”

졸업 후 취직시키는 것은 일종의 애프터서비스가 아니겠느냐며 웃는 부천대 김 교수.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학교에서 자꾸 튕겨나가는 학생들이 있어요. 아프다며 하루 이틀 안 나오고. 그러다가 관두는 건 쉽죠. 저는 그런 학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요. 지겨워할 정도로 연락하고 챙기죠. 처음엔 피하는 것 같지만, 진심을 느끼면 결국 돌아오더라고요. 그들이 원하는 건 너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한마디예요.”

자신의 노력에 힘입어 적응하지 못했던 학생이 웃으며 강의실에 들어설 때, 대꾸도 제대로 하지 않던 학생들이 먼저 인사할 때 가르치는 보람을 느낀다는 부천대 김 교수는 천생 선생이다.

“학생들을 통해 비로소 ‘내가 있을 자리가 여기구나’ 하고 깨달아요.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끼죠. 제가 이 자리에 온 게 기적인 것처럼, 제가 가르치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기적을 기대하고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기적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요.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이 기적은 아니잖아요.”

부천대학교 항공서비스과에서 좋은 인재를 키워 보내는 게 이제 김모란 교수의 몫이다. 물론 가르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가르치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 회사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맡아 진행한 적이 있다.


삶의 좌표를 알려준 엄마표 교육
모란. 이 예쁜 이름에는 부모님의 특별한 바람이 들어 있다. 물론 예쁘고 귀한 딸내미의 이름으로도 그만이지만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당부도 들어 있다. 그래서일까? 한 번도 일정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소위 일탈 말이다. 물론 남들과 똑같이 사춘기를 겪고 방황도 했지만 철이 들고부터는 늘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해 애써왔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머니의 교육법이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교수의 어머니는 항상 책임감을 중요시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늦잠을 자도 깨워주는 법이 없었고, 특히 밥상머리에서 표정이 안 좋으면 식사를 못 하게 하는 엄격한 분이셨다.

“네 기분이 나쁘다고 가족에게까지 전염시키지 말라며 밥그릇을 뺏으셨어요. 당시에는 원망스러웠지만 그러면서 저절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밴 것 같아요.”

어느 날 통장을 보여주며 이제 첼로를 그만둬야 한다고 설명하시던 엄마.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어머니의 모든 한(?)을 한순간에 풀어준 게 바로 딸의 교수 임용이다. 승무원을 했을 때도 좋아하셨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교수가 된 것을 더 기뻐하시는 눈치다. 그래서 김 교수는 임용되자마자 어머니에게 학교 캠퍼스도 구경시켜드리고, 연구실에도 모셨다. 다 둘러보신 어머니가 하신 한마디가 지금도 가슴에 박혀 있다.

“내가 안 죽길 잘했다. 모란아,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야 해. 정말 죽으면 안 되겠네.”

그게 딸에게 할 소리냐고 핀잔을 드렸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지난 세월이 힘드셨으면 그런 말이 나왔을까 싶었다.

“엄마가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을 거예요. 저라고 왜 어릴 때 유혹이 없었겠어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죠. 모든 자식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진심을 보여주면 자식도 저버리지 않죠.”

어머니 얘기를 하며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졌을 때 학생들이 방문을 노크했다. “교수님” 하는 소리에 그녀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저는 꼭 우리 학과를 전국 1등으로 만들고 싶어요. 정말 우리 아이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자세도 바르고, 마음씨도 곱죠. 어딜 가도 재원이 될 거라 믿습니다.”

오늘도 내성적인 학생, 마음에 고민을 품은 학생을 찾아다니며 ‘서비스’하는 부천대 김모란 교수. 그녀의 웃음에는 모란꽃에는 없는 향기가 배어 있었다.

CREDIT INFO

기획
장은성
진행
이지안
사진
박원민
2013년 10월호

2013년 10월호

기획
장은성
진행
이지안
사진
박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