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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하나로 스타덤에 오른

17세 국악신동 송소희의 꿈

‘예쁘다’는 말보다 ‘곱다’는 말이 어울리는 17세 소녀가 있다. 통신사의 광고 한 편으로 국악계 아이돌로 떠오른 송소희양이다. 최근에는 <스타킹>과 <1박 2일> 등 예능까지 점령하며 차세대 국민 여동생 자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On December 20, 2013


“아니라오, 아니라오~ 다 되는 건 아니라오~”
한 통신사 CF에서 고운 한복을 입고 등장해 구성진 민요풍의 노래로 화제를 모은 17세 소녀가 있다. 특히 그녀는 뛰어난 국악 실력 못지않게 아이돌 뺨치는 귀여운 외모를 자랑해 더욱 시선을 끈다. 알고 보니 그녀는 5년 전 <스타킹>을 통해 유명세를 떨친 국악 신동 출신.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그녀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고등학생이 됐다. 최근에는 다시 한 번 <스타킹>에 출연해 상큼한 모습을 뽐내는가 하면, 인기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해 ‘국악 신동 송소희의 폭풍 성장’으로 검색어 1위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광고계의 러브콜도 잇따랐다. 김연아, 수지, 손연재를 잇는 차세대 ‘국민 여동생’의 탄생을 예고한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국노래자랑> 무대로 데뷔
자그마한 체구에 나긋나긋한 말투. 송소희양은 TV를 보고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인터뷰를 위해 한 방송국 로비에서 만난 소희양과 그의 가족은 아직도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소희양이 맨 처음 방송에 얼굴을 내민 것은 2008년 <전국노래자랑> 예산군 편에서였다. 겨우 5학년인 초등학생이 나와 구성진 민요 ‘청춘가’ 가락을 부르자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녀는 거기서 대상을 수상하고, 이어 상반기 결산, 연말 결산에서도 최연소 대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수상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나간 건 아니었어요. 그저 제가 살던 예산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대에 한번 서보겠다는 생각으로 출전했습니다. 당시 어린아이가 나와서 국악을 하니 사람들이 신기했나 봐요. 그 방송을 본 <스타킹> 작가님께서 연락을 주셨고,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국악 신동’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죠.”(송소희)

<스타킹> 출연 이후에는 무대에 설 기회가 많아졌다. 각종 국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하고 행사 무대에 선 적도 많다. 자연스레 소속사도 생겼고,한복을 협찬해주는 디자이너 실장님도 만나게 됐다.

“무대용 한복은 한 벌에 2백만~3백만원 정도 해요. 저희 집이 넉넉한 편도 아닌데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새로운 한복을 입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제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한복을 협찬해주신 박지연 디자이너 선생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제 나이에 딱 맞게 만들어주셔서 제가 덕을 많이 봤죠.”


엄마, 아빠는 열렬한 지원군
소희양은 좋은 스승도 많이 만났다. 처음 그녀에게 국악의 즐거움을 일깨워준 박석순 스승, 사물놀이와 비나리를 알려주신 사물놀이 창시자 이광수 스승, 무형문화재이자 살아 있는 국악계의 전설로 손꼽히는 이호연 스승이 그분들이다. 소희양은 만약 자신이 그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자신의 재능도 국악의 즐거움도 알지 못했을 거라고 말한다.

소희양이 처음 국악을 접하게 된 때는 다섯 살 무렵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다. 소희양의 아버지 송근영씨와 어머니 양복예씨는 늦은 결혼으로 마흔이 넘어서야 첫딸 소희양을 품에 안았다. 소희양에 대한 부모의 애정은 각별했다. 소희양이 조금이라도 흥미를 보이는 일이라면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다. 국악에 처음 발을 들인 것도 그 때문. 동네에 국악학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우연히 찾아갔는데 고작 다섯 살배기 아이가 그 어떤 것보다 재밌어하고 습득력도 여느 아이들보다 빨랐다. 국악을 더 적극적으로 시켜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엄마는 하던 식당마저 접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사실 소희양의 어머니는 가수 조용필의 열렬한 팬이었다. 처녀 때부터 조용필 콘서트가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갈 정도였다. 그래서 딸 소희양을 예능에 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고 한다. 소희양을 데리고 전국 팔도 유명한 국악계 선생님들을 찾아다녔다. 그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엄마는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소희양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엄마가 직접 차를 운전해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소희의 스케줄이 확 늘어났는데 식당을 계속 운영하면서 아이를 따라다니기는 어렵겠더라고요. 일주일에 두 번씩은 국악을 배우러 서울을 오가야 했으니까요. 아빠도 사실 신문사를 다녔는데 소희 뒷바라지를 하느라 일을 그만뒀어요. 국악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참 많거든요. 국악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사물놀이, 비나리와 가야금까지도 알아야 해요. 어린아이가 힘들었을 텐데 짜증 한 번 안 냈어요. 그걸 보면서 더 뒷받침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엄마 양복예씨)

소희양의 부모는 소희양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한다. 연습할 때면 연습실로, 방송할 때면 방송국으로 거의 로드매니저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소희양의 작은 실수도 부모님은 금세 알아차린다.

“가끔 리허설 때 가사 실수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웬만해선 다들 눈치를 못 채거든요. 유일하게 눈치채는 분이 바로 부모님이세요. ‘너 두 번째 소절 첫 번째 마디 틀렸더라’라고 지적해주시곤 하죠. 항상 매의 눈으로 지켜보시니까 느슨해질 틈이 없어요.”(송소희)

국악의 대중화를 꿈꾸는 소녀
소희양이 부르는 우리 가락은 국악 중에서도 경기민요다.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로 착각하는데, 사실 판소리와 경기민요는 국악이라는 큰 줄기만 같을 뿐 다르게 분류된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흥부가’나 ‘적벽가’같이 이야기를 읊는 것은 판소리, ‘아리랑’이나 ‘늴리리야’ 같이 좀 더 경쾌한 선율은 경기민요다. 쉽게 말해 좀 더 곡조가 느껴지는 것이 경기민요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는 대중이 국악을 좀 더 친숙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경기민요가 대중과의 교감에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곡조가 있어서 따라 부르기가 쉽고 흥겨워요. 잘 알려진 국악을 대중의 입맛에 맞게 편곡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송소희)

예체능 계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쯤 슬럼프를 겪는다. 소희양도 다섯 살 때부터 경기민요를 시작했으니 벌써 12년이 됐다.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국악은 곡의 폭이 넓지 않아 같은 곡을 계속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그만큼 지루해지기 쉬워 슬럼프에 빠지는 친구도 많다.

“배우는 과정에선 누구나 슬럼프를 겪잖아요. 소희라고 왜 그런 때가 없었겠어요. 아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남편은 ‘좀 쉬어’라고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죠. 입도 한 번 못 떼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의자에 앉혀놨어요.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할 때 쉬라고 하면 그 재능이 묻히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내가 갈 길은 이곳’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하더군요.”(엄마 양복예씨)

소희양은 국악을 친숙하게 재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것을 배운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댄스, 작곡, 실용음악도 가리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경기민요에 접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악 아이돌 송소희의 일상
올해로 열일곱. 소희양도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 마냥 좋은 소녀다. 국악인이라고 해서 국악만 듣는 것은 아니다.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최신 가요를 좋아하고 드라마도 즐겨 본다. 얼마 전 출연한 예능 <1박 2일>도 소희양이 꼭 챙겨 보는 프로 중 하나. 소희양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며, 얼마 전엔 제주도로 수학여행도 다녀왔다.

“제주도 수학여행 때 요트를 탔는데 거기에 노래방 기계가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제게 광고에서 불렀던 ‘아니라오’를 한 번 불러달라고 하더라고요. 요즘에도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많이 응원해줘요.”(송소희)

다른 친구들은 공부하는 동안 소희양은 연습을 하러 가기 때문에 친구들이 많지 않을 법도 하다. 하지만 특유의 밝은 성격 덕에 오히려 친구들과 잘 어울려 학생회장까지 맡을 정도다. 소희양의 밝은 성격은 얼마 전 히트를 친 광고 촬영 현장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광고 마지막에 ‘웰컴!’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사실 그 부분을 놓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현대적인 통신사의 광고에 다소 고전적인 국악을 덧씌우는 일이잖아요.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이 재미있게 광고를 기억해줄까를 스태프들과 함께 고민했죠. 처음엔 ‘냉큼!’ ‘얼른!’ 등 여러 가지를 많이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웰컴!’이 가장 입에 잘 붙더라고요. 결과가 좋은 것 같아서 저도 기뻐요.”(송소희)

말은 겸손하게 해도 소희양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큰 무대에 선 적도 많다. 작년에는 뉴저지에서 단독 공연을 두 번이나 해냈다. 현지에서의 반응은 국내 반응보다 더 뜨거웠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소희양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오는 12월 8일, 소희양은 광주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단독 콘서트를 연다. 소리가 아니면 답이 없다는 소희양. 열일곱 소녀의 당찬 꿈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소희양의 부모는 소희양의 모든 스케줄을 관리한다. 연습할 때면 연습실로, 방송할 때면 방송국으로 거의 로드매니저나 다름없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소희양의 작은 실수들도 부모님은 금세 알아차린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제공
송소희
2013년 12월호

2013년 12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제공
송소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