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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인생 30년 박찬호의 인생계획서

우리에게 ‘코리안 특급’으로 기억되는 박찬호가 마운드를 떠난 지 7개월이 지났다. 열 살 때 야구를 시작해 꼬박 30년을 야구와 함께했던 그는 은퇴 기자회견장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런 그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며 지난 야구 인생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들려줬다.

On October 17, 2013

“은퇴를 생각하면서 너무 두려웠습니다. 내 집이자 학교였던 마운드를 떠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어요. 이제는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시작하려고요.”
그는 올해로 마흔. 열 살 때쯤 야구공을 잡았으니, 야구와 함께한 세월이 꼬박 30년이다. 그의 인생에서 야구장은 집이자 학교였다. 그가 배운 것도 야구였고, 배울 것도 야구였기 때문이다. IMF로 한국 경제가 어렵던 시절, 그가 미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들을 차례로 삼진 아웃시키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찬호 선수의 경기가 열리는 때면 사람들이 TV 앞에 삼삼오오 모여 함께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IMF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아 상황이 안 좋았는데 박찬호 경기를 보며 힘을 얻었다, 큰 위로가 됐다’면서 편지를 보내주신 분이 많았어요. 이제는 선수로서 공을 던질 수 없지만, 글로나마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찬호는 자신의 야구 인생 30년을 담은 자전 에세이집을 들고 우리 곁에 찾아왔다. 책의 인세는 전액 유소년 야구 발전 기금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그는, 미국에서 ‘야구’만 배워 온 게 아니라 ‘인생’을 배워 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다.
박찬호는 말한다. 그에게 야구는 단순히 직업이나 스포츠가 아닌 삶 자체였고, 야구라는 예술 속에서 자신이 공이 되어 그 새로움을 표현했던 것 같다고. 특히 ‘투수’라는 포지션은 한 경기 안에서 자신의 인생 전체를 맛본다고 말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서 사회성을 기르는 것처럼 박찬호는 마운드에서 그랬다는 얘기다. 마운드 위에 서면 한 경기 안에서도 타자가 여러 번 바뀌면서 상대의 타구 스타일이 변하고, 그가 던지는 공의 질이 변한다. 이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에선 또 다른 팀을 만난다. 그러면서 또다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
“야구 유니폼이라는 교복을 입고 야구장에서 야구라는 과목을 배우며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어요. 거기서 저는 다양한 선수와 팬, 라이벌을 만나면서 매일 삶의 의미를 깨달았죠.”
그런 그가 야구장을 떠난다는 건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결정하고 나니 그제야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제야 졸업을 하는 것 같아요. 나의 야구 인생 30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이후의 삶을 설계하는 느낌입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명성을 떨쳤던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2002년, 5년간 총 6천5백만 달러(연평균 우리 돈 약 1백50억원)를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부진한 성적으로 ‘먹튀’ 논란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 사람들은 왜 일본인 선수 노모 히데요가 세운 123승보다 겨우 1승 앞선 124승에서 멈췄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123이 그렇듯, 124라는 숫자 역시 125승 투수가 나오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거예요. 제가 깨달은 건 124승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과정에 있다는 겁니다"

“그땐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어요. 긴 슬럼프였죠. 명상하면서 저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봤고, 과거의 화려한 순간을 붙잡고 있던 저를 발견했어요.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 집착하는 마음을 하나둘씩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제게도 다시 재기할 기회가 생기더군요.”
2005년과 2006년에는 장출혈로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하기도 했다. 혈액의 반을 수혈받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리해서라도 출전하려 했지만, 사랑하는 아내와 딸 애린이를 생각하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경기하다 출혈이 심해져 쓰러지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수술 후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새삼 깨달았다. 박찬호는 요리연구가인 아내 박리혜씨의 위로와 격려가 있었기에 부상을 털고 재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2010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124승을 달성했다. 124승은 아시아인으로선 메이저리그 최다 승수다.
“사람들은 왜 일본인 선수 노모 히데요가 세운 123승보다 겨우 1승 앞선 124승에서 멈췄느냐고 물었어요. 하지만 123이 그렇듯, 124라는 숫자 역시 125승 투수가 나오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거예요. 제가 깨달은 건 124승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그 과정에 있다는 겁니다.”
은퇴 후에도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여전히 ‘오늘은 어떤 팀이랑 경기 하지?’ 하는 생각이 든단다. 갑자기 달라진 생활 패턴에 한동안 ‘멘붕’이 왔다고. 줄곧 규칙적으로 운동, 연습을 반복해온 삶이라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가 영 어색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요즘은 골프를 치고 있어요. 그런데 야구랑 비슷한 점이 참 많은 것 같더라고요. 투수도 혼자 하고 스스로 해내는 거거든요. 상대 타자가 잘 치고 못 치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투수 같은 마음으로 골프를 치니 다시 예전처럼 활기 넘치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그는 어떤 것을 설명하든지 항상 야구에 빗대어 표현한다. 지금껏 야구를 빼놓고는 박찬호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야구장을 떠나 처음 나온 사회지만, 그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넘어져 피가 나면 엉엉 울다가도 상처 부위에 밴드를 붙여주면 울지 않아요. 그 위에 새살이 돋는다는 걸 아는 거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넘어져도 괜찮아요.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면 다시 안 넘어질 수 있어요. 새살은 언제든 돋아날 테니까요.”
그는 이제 야구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사회에 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의 인생 2막은 지금부터다.

야구를 통해 깨달은 박찬호의 인생 지침 6

1.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방법 - 이기든 지든, 자신에게 집중하라
박찬호는 선수 시절,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잘못 던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그 매덕스라는 유명한 투수도 자신과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레그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최고의 투수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박찬호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두려움’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자신의 두려움을 알면 용기 내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어요. 훈련과 연습을 할 때 실제 경기처럼 몰입하면서 다음을 준비하는 거예요.”
그는 그레그 매덕스가 자신의 두려움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매덕스는 자신의 플레이를 반복해서 관찰했다. 자신이 던진 공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그 안에서 좋은 습관과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결국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이기고 지느냐가 아니다. 승패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2. 변화 속에서 새로운 힘이 나올 수 있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절, 그의 주특기는 파워 넘치는 빠른 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왔다. 처음에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강속구를 포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볼에 변화를 줬다. 빠른 볼 대신 ‘투심패스트볼’이라는 새로운 구종을 개척하면서 그는 다시 야구에 설렘을 느끼게 됐다.
“빠른 볼을 잘 던지는 선수가 파워가 떨어질 때까지 빠른 볼만 고집하는 것과 다른 구종도 익혀서 같이 쓰는 것 중 어떤 게 더 강할까요? 스스로 자신의 장점을 내려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실은 자꾸 변한다. 오늘은 공을 못 친 타자가 내일은 멀리 치기도 한다. 오늘 진 이유를 분석해 내일 새로운 모습으로 경기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변화하는 내일에 적응하기 위해 나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3. 조급해하지 말고 내일을 준비하라
야구를 하다 보면 연패의 늪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감독과 선수들은 당장 어려움을 돌파하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한다. 그래서 무리한 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내일 경기는 염두에 두지 않고 오늘 쓸 수 있는 타자들을 다 내보낸다. 혹은 체력을 아끼기 위해 그만 던져야 하는데 악착같이 더 던지려고 하는 투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이렇게 해도 안 되는구나 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만다.
박찬호는 이것이 비단 스포츠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 인생에도 슬럼프라는 게 있다. 한 번 실패했는데, 또 한 번 실패하기도 한다는 거다.
“그럴 때일수록 오늘 하는 일에서 작은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 야구 선수로 성공하고, 강한 팀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의 승리는 늘 준비되어 있다는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훈련이나 믿음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할 수 있다는 의지와 간절함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겁니다.”

4.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사회의 영웅이 된다
스포츠맨십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이기기 위해서는 해도 되지만, 그것이 때로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박찬호는 이런 것을 당당하게 거부해야만 야구의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4~5점 차로 크게 앞서면서도 마무리 투수를 내보내 상대방 팀을 완전히 박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욕감을 주기 위한 플레이입니다. 큰 점수 차로 이기는 상황에서 번트를 대어 출루하는 작전 역시 마찬가지예요. 확실하게 이길 수는 있겠지만 정말 ‘잘하는 야구’라는 생각은 들지 않죠.”
박찬호는 할 수 있다면 정면으로 승부하라고 말한다. 타자는 투수의 공에 정확하게 반응해 힘껏 방망이를 휘둘러야 하고,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던져 삼진을 잡아내야 한다. 그게 박찬호식 야구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들을 꼬집는 것 같다. 박찬호는 약한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이해심이 있을 때 사회의 영웅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그는 강한 상대와 정면 승부를 벌일 때 진짜 재미를 느끼는 그런 사내다.

5. 좋은 리더는 끝까지 믿어준다
그는 긴 야구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코치와 감독을 만났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좋은 리더란 선수들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코치들은 여러 가지를 떠올리고 판단합니다. 같은 선수에 대해서도 다르게 판단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상황에 많이 열려 있죠. 소통할 때도 상대 선수를 존중하면서 얘기합니다.”
선수 시절 항상 잘하기만 했던 코치나 감독들은 성적이 부진한 선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박찬호는 자신의 선수가 꽃을 피우길 원한다면 계속 투자하고 믿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너무 큰 기대는 선수에게 부담만 줄 뿐이다.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박찬호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믿음, 상대에 대한 믿음, 리더에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목표를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6.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라
“한번은 1회부터 홈런을 맞고 점수를 퍼주던 경기가 있었어요. 너무 화가 났지요. 그런데 그 타자가 다음 타석에서 또 홈런을 치려고 엄청나게 스윙을 해대는 거예요. 그 모습에 분을 참지 못하고 빈볼을 던졌어요. 다행히 타자가 공을 피해서 맞지는 않았지만 고의성이 있었기 때문에 심판이 내게 경고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나를 바로 교체하더군요.”
그가 미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팀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였다. 빈볼을 던져 교체된 후 그는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팀의 경기를 망칠 뻔했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시간과 장소에 맞게 판단하는 법을 배웠고, 현재 감정이 팀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스스로 체크하기 시작했다.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전날 술을 많이 마신다든지, 훈련 외적인 것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려 했다.
우리는 모두 동료가 필요하다. 하나의 무리 속에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팀의 목표를 위해 노력할 때, 그 안에서 자신도 성장한다는 것을 이제 그는 안다.

그는 올해로 마흔. 야구와 함께한 세월이 꼬박 30년이다. IMF로 한국 경제가 어렵던 시절, 그가 미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힘이 됐다. 메이저리그에서 타자들을 차례로 삼진 아웃시키는 모습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CREDIT INFO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최항석, 웅진지식하우스
참고자료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웅진지식하우스)
2013년 07월호

2013년 07월호

취재
정희순
사진
박원민, 최항석, 웅진지식하우스
참고자료
<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웅진지식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