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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모녀의평범한이야기│여덟 번째

그녀들에게남자친구가없는이유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인이가 말했다. 참고로 유정이는 요즘 서인이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이다. 그런 유정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서인이의 표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왜냐? 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On October 09, 2013

막상 서인이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니 불안했다. 결국 나는 남자아이의 미니홈피를 추적하며 뒷조사를 했다. 요즘 말로 신상을 턴 것이다

그 소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

“엄마. 유정이, 남자친구 생겼대.”
밸런타인데이를 며칠 앞두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서인이가 말했다. 참고로 유정이는 요즘 서인이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이다. 그런 유정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으니 서인이의 표정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왜냐? 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너 이제 누구랑 놀아?”라고 걱정하는 척을 했더니 “내 말이! 이렇게 배신을 때리다니” 하며 화를 내는 게 마치 유정이한테 남자친구라도 뺏긴 것 같은 분위기다. 이에 나도 질세라 호기롭게 외쳤다. “너도 이번 참에 남자친구 만들어버려!”

그런데 막상 뱉고 나서 생각해보니 참 무책임하다 싶었다. 스무 살 여자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게 ‘뭐가 어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연애에 대해서 만큼은 조선시대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보수적인 나는, 이 남자 저 남자 만나서 연애하는 것보다 생애 단 한 명만으로 충분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흉흉한 세상에 고명딸을 키우는 홀어미의 심정이 쿨하기만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정작 내 마음은 그러한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어버린 것이다.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남자들이 나랑 안 사귀어줘.”
‘어머,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왜 안 사귀어줘? 이것들이’ 하는 욱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20대 초반의 남자라도 서인이 같은 스무 살 여자, 좀 감당하기가 힘들 것 같다. 잔정 없지, 애교 없지, 만사가 귀찮은 귀차니즘에 지나치게 쿨한 데다 결정적으로 세다. 그래도 ‘넌 여자친구로는 좀 그래’ 라고 말할 수 없어서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네가 어때서?”
“엄마는 엄마라서 내가 완벽해 보이지만 남자들은 나 무서워해.”
“너 혹시, 지금 남자친구 있는데 엄마한테 말 안 하는 거 아냐?”
나는 혹시나 싶어서 물었다.
“없어.”
정말 없는 모양이었다. 속으로 안도하는 순간, 다음에 이어지는 서인이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있어도 이젠 엄마한테 말 안 할 거야.”
“왜? 당연히 엄마한테 이야기해야지.”
“왜라니? 몰라서 물어?”

사실, 안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남자친구다운 남자친구가 생긴 서인이는 수줍고 설레는 표정으로 나에게 이야기했었다.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모델을 한다고 했다. 교회도 다니고, 착하고, 잘생기고 키도 크다며. 서인이는 마치 결혼이라도 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당시만 해도 서인이는 나를 쿨하고 열린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런 엄마였다.
그런데 막상 서인이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하니 불안해졌다. 아빠도 없이 자랐는데 남자 보는 눈이 있겠나 싶었다. 결국 나는 남자아이의 미니홈피를 추적하면서 뒷조사를 했다. 요즘 말로 신상을 턴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인이는 불같이 화를 냈고, 얼마 후 남자친구와 헤어졌다.엄마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못 만나겠다는 거였다.
그 후로 서인이는 남자친구의 존재를 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 말만 안했다 뿐이지 주위에서 다 아는 딸의 남자친구의 존재를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 친구도 ‘신상을 털었다’기보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봤다.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인이는 스토커, 올가미 같은 범죄라고 했다. 결국 그 친구와도 헤어지고 서인이의 연애 소식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나한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기도 해. 남자친구 신상 터는 엄마 부담스러워서 어디 만나겠어?”
스무 살, 꽃다운 서인이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엄마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나는 절대 인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

언젠가 서인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남자친구가 없는 것 같아?”
그러게. 나는 왜 남자친구가 없을까? 마흔이 넘은 이후,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애달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 ‘마음 통하고, 유머러스하고, 요리 솜씨가 좋은 남자친구가 있으면 인생이 좀 더 풍요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한다. 가뭄에 콩 나듯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지금은 전적으로 내 탓이라고 생각한다. 잔정 없고, 무뚝뚝하고, 귀차니즘에 지나치게 쿨한 내 탓이다(서인이는 나를 닮았다). 마음과는 달리 나의 대답은 엉뚱하다.
“잘생긴 남자친구를 사귀라는 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지 못해서.”
나의 대답에 서인이가 기가 막힌 듯 보더니 그냥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렇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없는 이유는 엄마의 남자친구는 꼭 잘생겨야 한다고 협박하는 딸 때문이다. 물론, 서인이는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녀들의 ‘솔로대첩’

우리에게 밸런타인데이니 화이트데이니 하는 기념일들은 추운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봄날의 따뜻한 기억을 망치는 주된 원인들이다.
‘왜 우리가 우리의 봄을 망쳐야 하는가. 이런 건 다 장사꾼들의 상술에 지나지 않아. 상대방을 향한 소중한 마음이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아무리 두 주먹 꼭 쥐고 소리 높여 외쳐도 좀 쓸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솔로가 두 명이나 있지 않은가. 커플이 어떻게 해서 커플이 되었는가. 솔로 두 명이 만나 커플이 되지 않는가.연인들이 그깟 초콜릿, 사탕 따위 주고받으면서 닭살 돋는 연애질을 하고 있을 시간, 나와 서인이는 영화를 보러 갔다.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찬 멋진 남자들이 떼 지어 나오는 액션 영화를 보면서 ‘솔로대첩’을 즐긴다. 말 그대로 즐겁다.

봄의환 작가는…
2003년 KBS <드라마시티> 극본 공모전에 <귀휴>가 당선되면서 등단, 영화 <마지막 선물>, 뮤지컬 <황진이>, MBC 드라마넷 <별순검 시즌3>을 집필한 작가이자 싱글맘. 본지를 통해 예술적 재능과 성향이 엄마를 꼭 닮은 딸 김서인양과 투닥거리며, 이해하며, 사랑하며 사는 정다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CREDIT INFO

기획
이윤정
봄의환
사진
홍상돈
촬영협조
CGV
2013년 03월호

2013년 03월호

기획
이윤정
봄의환
사진
홍상돈
촬영협조
CG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