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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다이버 워치

튜더 블랙베이 54는 새로운 시대의 맨 앞에 있을까, 이전 시대의 맨 끝에 있을까?

UpdatedOn June 0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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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열 살 차이 나는 옆자리 주현욱 에디터는 갖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다. 그는 2023년 워치스 앤 원더스 신제품을 보고 나서 튜더 블랙베이 54에 큰 흥미를 보였다. 튜더 블랙베이 54는 2023년 출시된 튜더의 신형 손목시계다. 전작 블랙베이 58에 비해 지름이 2mm 작다. 이번에 워치 북을 만들며 안부를 물었던 해외의 시계 전문가들도 인상 깊은 시계로 블랙베이 54를 꼽았다. 지난주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들른 김에 물어보니 블랙베이 54는 완판돼서 구할 수 없다고 했다. 정말 세상이 바뀌는 걸까? 튜더의 시대가 오는 걸까? 기대 반 궁금증 반으로 시착용 시계를 받았다.

블랙베이 54가 관심을 끈 이유 중 하나는 시계의 원형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1954년에 출시된 튜더 다이버 워치 Ref. 7922. 튜더 최초의 다이버 시계, 프랑스 해군 소속 수중 연구 그룹에 공급됐다. 당시의 시계가 여전히 고가에 거래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블랙베이 54는 Ref. 7922의 충실한 재현이다. 해외 포럼에서는 현재 블랙베이 54의 브레이슬릿이 당시 시계와 호환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주요 디자인 스펙이 호환된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원본과 100% 같은 복각은 없다. 튜더 블랙베이 54도 그 시절 Ref. 7922와 상당히 흡사하면서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베젤 가장자리에 난 홈이 조금 두꺼워졌다. 12시 방향 튜더의 로고 타입과 6시 방향 성능 표시 문구도 조금 바뀌었다. 핸즈도 바뀌었다. 튜더와 롤렉스는 같은 그룹사다. 당시에는 핸즈 등의 부품을 공유했다. 지금의 튜더 블랙베이 54는 튜더 특유의 ‘스노플레이크’ 핸즈를 쓴다.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비교하면 크라운 가드가 없고 다이얼 세공이 조금 더 간결하고 크기도 조금 작아졌다. 완전히 귀금속화한 롤렉스에 비하면 아무래도 옛날의 ‘툴 워치’, 즉 도구로서의 기능에 충실한 시계 느낌이다.

같은 건 모양뿐이다. 오늘날의 시계는 21세기 최첨단 대량생산 고급품 시대의 산물이다. 1초 단위로 프린트된 인덱스나 각 시침 부분에 붙어 있는 금속 인덱스의 품질도 확연히 높아졌다. 브레이슬릿도 눈여겨봐야 한다. 3열 브레이슬릿의 좌우 양 끝에 리벳을 붙였다. 기능이 아닌, 옛날 물건 분위기를 내는 장치다. 시계를 덮은 유리의 가장자리가 돔 형태로 마무리된다. 이 역시 옛날 물건 분위기를 한층 키우는 장치다.

옛날 물건 분위기에 비해 디테일은 현대적이다. 버클이 체결되는 부분에 좁쌀 크기의 흰색 덩어리가 튀어나와 있다. 이 부분에만 세라믹을 썼다. 덕분에 버클을 차고 풀 때 한층 부드럽다. 버클 안에 장착한 ‘T-핏 클래스프’도 언급하고 싶다. T-핏 클래스프를 쓰면 한 번에 최대 8mm까지 브레이슬릿 길이를 바꿀 수 있다. 8mm까지 브레이슬릿 길이가 바뀌면 남녀 커플이 하루씩 나눠 차도 된다. 멋도 멋이지만 편리한 사용성 극대화를 노렸다는 걸, 시계를 차면 찰수록 느낄 수 있었다.

무브먼트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블랙베이 54에는 튜더 매뉴팩처 무브먼트 MT5400이 들어 있다. COSC 인증을 받고 파워 리저브가 70여 시간인 무브먼트다. 금과 비중이 비슷한 텅스텐을 로터로 사용하고 실리콘 헤어스프링을 쓰는 등 성능을 많이 끌어올렸다. 실제로 파워 리저브가 길어지니 시계 생활에 한층 여유가 생겼다. 이전 기계식 시계들은 보통 파워 리저브가 40시간 남짓. 사실상 하룻밤만 안 차도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파워 리저브가 길어지니 실제로 주말 내내 안 차고 월요일에 봐도 시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날의 사정에 맞게 기능이 진화한 경우다.

튜더 블랙베이 54가 흥미로운 이유는 관점에 따라 스위스 시계의 첨단일 수도, 막다른 골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계를 오래 좋아한 애호가와 저널리스트는 스위스 손목시계에 새로운 게 없다는 이야기를 몇 년째 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못하니 계속 복각 모델이나 한정 모델, 의미 없는 협업 모델을 낸다는 것이다. 튜더 블랙베이 54 역시 그런 트렌드의 그늘 안에 있다. 결국 복각 시계니까. 다만 이 시계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손색없는 툴 워치다. 튼튼하고 시간 잘 맞고 디테일 오래가고. 이 시계는 간단해 보일 수 있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은 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실제로 튜더 블랙베이 54의 상품성은 훌륭한 수준이다. 200m 방수에, 그것을 가능케 하는 스크루 크라운백에, 프린트로 처리하지 않고 일일이 붙인 바 인덱스에, T-핏 클래스프까지 포함된 브레이슬릿을 장착하고, 무브먼트도 COSC를 만족시키는 우수한 시계인데도 브레이슬릿 버전이 5백7만원이다. 고무 밴드 버전으로 구입하면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해진다. 시계의 스펙을 뜯어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블랙베이 54의 경쟁력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튜더는 오랫동안 ‘튜더 살 거면 롤렉스 사지’ 같은 말로 소모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롤렉스는 모든 면에서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다. 사람들의 인기와 재판매 가격만 해도 그런 건 물론, 롤렉스와 튜더는 사용하는 스틸 소재도 다르다. 보면 볼수록 오늘날의 롤렉스는 자산 수준의 귀금속이다. 그에 비하면 튜더는 훨씬 차기 편하다. 구입하기도 어렵지 않고, 요즘은 롤렉스를 차면 하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데 튜더는 편하게 찰 수 있다. 일단 이 사이즈의 시계를 원했다면 이런 크기의 시계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런 게 끌린다면
‣ 빼어난 만듦새와 품질
‣ 빈티지 시계 복각이라는 상징성
‣ 편안한 브레이슬릿 체결 시스템


이런 게 망설여진다면
‣ 날짜창 없이 시, 분, 초만 있는 다이얼
‣ ‘롤렉스 못 사서 튜더 차는 애’라고 볼 은근한 사회적 압력
‣ 상품성이 높다 해도 조금 비싸다 느껴지는 가격

튜더 블랙베이 54

레퍼런스 M79000N-0001 케이스 지름 37mm 두께 11.24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스틸 방수 200m 버클 폴딩 버클 브레이슬릿 스테인리스스틸 무브먼트 튜더 MT5400 기능 시, 분, 초 표시 파워 리저브 70시간 구동 방식 오토매틱 시간당 진동수 28,800vph 한정 여부 없음 가격 5백7만원(고무 스트랩 버전 4백7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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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동훈

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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